김재진 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걷기가 건강에 좋다는 사실이 많이 알려져 아주 많은 사람이 헬스클럽, 공원, 강변에서 걷기를 하고 있다. 진료실에서 요즘 우울증 환자들에게 적극 권하는 활동도 걷기다. 신체활동 활성이 뇌 활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중년을 넘긴 환자들은 걷기를 비교적 잘 받아들이지만, 젊은 환자들에게는 그냥 귀찮은 활동으로 여겨 막상 시작해도 작심삼일로 끝난다. 걷기가 분명히 건강에 좋다는 걸 알지만 재미 없다는 게 문제다.
우리 일상에서 가장 강력한 동기 유발자는 재미다. 젊은이들에게 특히 그렇다. 요즘 젊은이들은 재미를 대부분 화면이 있는 도구에서 얻는다. 화면이 제공하는 가상 현실은 아주 강력한 동기 유발자다. 그래서 집에서는 TV와 컴퓨터 화면에 몰두하고, 밖에서도 스마트폰 화면에 몰입한다.
필자는 수년 전 젊은 정신질환자들을 대상으로 사회기술훈련에 가상현실 기술을 적용하면 효과를 배가시킨다는 연구결과를 외국 학술지에 발표한 적이 있다. 그런 결과가 가능했던 것은 훈련에 귀찮아하던 환자들에게 가상현실 화면이 재미를 유발해 훈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이끌어냈기 때문이었다.
화면을 통해 제공되는 가상에 현실과 유사한 환경이 제공되고, 현실을 뛰어넘는 상호작용까지 가능해지면서 우리 일상은 화면에 더 종속되고 있다. 화면에 종속된 일상의 부작용의 하나가 운동부족이다. 화면이 없던 과거에는 재미의 원천은 놀이였고, 이는 모두 몸의 움직임을 필요로 했다.
그러나 화면에 종속된 현대의 놀이에는 몸의 움직임을 그다지 필요하지 않는다. 적절한 운동이 정신건강에 필수이지만, 화면에 종속된 생활은 운동이 제한되고, 정신건강에도 역기능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포켓몬 고’ 게임이 화면 종속의 순기능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 게임은 실제 현실 배경에 가상 애니메이션을 올려놓는 방식의 증강현실 기술을 이용한다. 필자는 증강현실 기술이 인간 뇌에 미치는 영향을 자기공명영상(MRI)을 통해 연구한 적이 있다.
자신의 몸을 화면에 보여주면서 가상의 불꽃이 몸에 일게 했더니 뇌에서 공포중추가 활성화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현실과 가상의 합성이 강력한 뇌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이러한 강력한 뇌반응 때문인지 증강현실 게임은 현실과 가상의 결합을 통해 강력한 재미를 불러일으키고, 그래서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찾는 단순한 게임임에도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작은 방에 가만히 앉아서 해야 하는 기존 컴퓨터 게임과 달리 이 게임을 하려면 많은 시간을 밖에서 돌아다녀야 한다. 걷기의 지루함 없이, 게임의 재미에 빠져 열심히 걷게 된다는 점에서 분명 이 게임에는 강력한 순기능이 있다. 운동을 재미있게 하도록 해줌으로써 정신건강에 조력자 역할을 할 수 있다.
이 열풍은 기술발전의 혜택으로 재미를 누리면서도 그 부작용을 걱정해온 우리에게 그 부작용마저도 기술발전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획기적 사건이다. 그래서 사생활 침해, 사고 위험 증가 등 또 다른 부작용 우려에도 불구하고 필자에게 이 열풍은 반갑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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