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구도심에서 신도심으로 출근하는 A씨는 지난 3월 운전 중 도로 한복판에 나뒹군 동물 사체를 보고 깜짝 놀랐다. 이리저리 튄 핏자국과 장기의 잔해들은 보기만해도 소름이 돋았다. 오가는 차량에 수 차례 치인 듯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훼손된 이 동물은 황색의 가죽만 남은 고라니였다. A씨는 “아침 출근길에 잊을 만 하면 차에 치여 죽은 동물들을 본다. 그런 날이면 음식을 대할 때 그 장면이 생각나 거북스럽고, 하루 종일 찝찝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세종시 신도심에 사는 B씨는 지난달 31일 늦은 오후 종촌동 제천변에서 새끼와 함께 물을 마시고 있는 고라니를 봤다. 앞서 세종소방본부는 지난 6월 4일 오후 세종시 어진동 정부세종청사 농림축산식품부 앞 울타리에 끼여 오도가도 못하고 있는 고라니를 구조하기도 했다.
친환경생태도시를 표방하는 세종시 곳곳에서 로드킬(차에 받혀 죽은 동물)이 속출하고 있다. 도심 한가운데까지 야생 동물들이 출현, 주민과 야생동물 모두 불안한 동거를 하고 있지만 당국은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22일 시에 따르면 관내에서 한 달에 최대 30건의 로드킬이 발생하고 있다. 하루 1마리의 야생동물이 도로 등을 지나다 차량에 치여 죽고 있는 셈이다.
로드킬이 주로 발생하는 지역은 대전 유성구 반석동에서 세종 신도시, 조치원읍을 잇는 국도 1호선과 세종호수공원에서 청주로 이어지는 국도 96호선이다. 세종시~공주시 도로와 호수공원 북측 국무총리실 앞 도로, 3생활권 수변공원 앞 도로 등에서도 로드킬이 자주 목격된다.
로드킬로 희생되는 야생동물은 주로 고라니다. 개와 고양이 등도 가끔 발견된다. 야생동물들은 먹이를 찾거나 이동을 위해 인근 산과 들에서 도로를 건너다 변을 당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로드킬은 야생동물뿐만 아니라 운전자들의 안전도 위협하고 있다. 대전에서 세종으로 출퇴근하는 D씨는 밤 늦게 대전 집으로 향하는 길에 고라니를 자주 목격한다. D씨는 “차량 전조등을 비추면 고라니가 도로 한복판에서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경우도 있다”며 “급히 핸들을 꺾다가 사고가 날 뻔한 적이 몇 번이나 있다”고 말했다.
야생동물, 특히 고라니는 첫마을 등 도심 속에서도 자주 목격되고 있다. 신도심 한 주민은 “매일 오전 6시쯤에 새벽운동을 나가는데 아파트 단지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고라니를 몇 번이나 봤다”고 말했다.
야생동물의 출현이 잦은 만큼 사망과 포획을 포함한 세종소방본부의 구조ㆍ구급도 많다. 올 상반기 고라니 구조건수는 63건에 이른다. 고양이와 조류도 16건~44건이나 된다. 너구리와 족제비, 부엉이ㆍ올빼미를 구조하거나 사체를 처리하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지만 시는 가장 초보적인 대응을 하고 있는 게 고작이다. 시 관계자는 “도로과는 사체 처리, 환경과는 보호원 및 포획단을 중심으로 야생동물 문제를 처리하고 있다”며 “인력은 한정됐는데 도로는 많아 예방은커녕 적극적인 조치도 어렵다”고 말했다.
야생동물 보호를 위한 시설 설치도 시급하지만 여의치 않다. 고라니 주의 표지판 정도만 있을 뿐 생태통로와 유도 보호망은 거의 없다. 도시의 녹지 비율을 높여 친환경 생태도시를 건설한다고 큰 소리치고 있지만 실상은 도시개발 논리에 치중해 자연생태계 공존 가치는 뒤로 밀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로는 야생동물을 안전하게 보호하면서 시민들의 불안감을 줄일 수 있는 보호유도망 등 관련 시설을 설치하고, 장기적으로는 지속적인 모니터링 등을 통해 ‘시민과 야생동물의 공존’을 담보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세종환경운동연합(준) 박창재 사무처장은 “야생동물 문제는 전국적으로 겪고 있지만 세종시는 친환경 생태도시 건설 계획에 맞춰 이 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모델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사무처장은 그러면서 “전문가들이 대거 참여해 오랜 시간 야생동물의 이동 경로를 확인해 생태통로를 만들고, 이를 제대로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출 필요가 있다”며 관계기관의 적극적인 의지와 노력을 강조했다.
글ㆍ사진=최두선 기자 balanced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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