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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민중미술과 中 냉소적사실주의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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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민중미술과 中 냉소적사실주의 만나다

입력
2016.08.22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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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민중미술을 대표하는 신학철 작가가 18일 학고재갤러리에 전시된 자신의 작품 ‘한국현대사-광장’ 앞에 서 있다. 학고재갤러리 제공
한국 민중미술을 대표하는 신학철 작가가 18일 학고재갤러리에 전시된 자신의 작품 ‘한국현대사-광장’ 앞에 서 있다. 학고재갤러리 제공

“중국의 냉소적사실주의 미술은 현실 자체를 비판적으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한국의 민중미술과 비슷한 것 같아요.”

한국 민중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로 꼽히는 신학철(73) 화백은 지난 18일 오후 학고재갤러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중국의 냉소적사실주의를 대표하는 작가 팡리쥔(方力鈞ㆍ53)을 두고 “만약 중국과 한국 현실이 같았다면 자신과 비슷한 작업을 했을 법한 작가”라며 이렇게 말했다.

신 화백과 팡 작가의 작품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기념비적 몸의 풍경’ 전시가 서울 종로구 소격동 학고재갤러리에서 9월 25일까지 열리고 있다. 두 작가의 회화 작품 10여 점을 소개하는 전시로, 한중의 작가가 각각 민중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비교해 볼 수 있는 기회다.

신학철 화백의 ‘한국현대사-광장’은 세월호 희생자 추모 집회를 묘사한 그림이다. 군중이 들고 있는 촛불로 인간의 선한 마음을 표현하고자 했다. 학고재갤러리 제공
신학철 화백의 ‘한국현대사-광장’은 세월호 희생자 추모 집회를 묘사한 그림이다. 군중이 들고 있는 촛불로 인간의 선한 마음을 표현하고자 했다. 학고재갤러리 제공

두 작가는 모두 다중의 역사적 경험과 동시대의 현실을 인간의 ‘몸’이라는 물질적인 매개체를 사용해 풀어낸다. 신 화백은 ‘그림에는 무엇보다 강한 느낌과 감동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작품에 한국 근현대사를 담기 시작한 민중미술의 대표주자다. 그는 전시에서 선보이는 ‘한국현대사’ 시리즈로 민중이 처한 현실과 그 속에서 태동하는 민중의 강인함을 보여준다.

직접 세월호 희생자 추모 집회에 참여했다는 신 화백은 집회 전경을 담은 대작 ‘광장’(2015)을 소개하며 “촛불이 가진 선한 힘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지난 3월 홍콩아트바젤에서 선보였던 이 작품은 대규모 군중이 촛불을 들고 있는 가운데 세월호를 닮은 남녀의 신체가 커다랗게 그려져 있다. 그는 “개인적인 정치 성향도 담겼겠지만 민중이 갖고 있는 집단성이나 공동성을 드러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수십 년 째 5ㆍ18 광주민주화운동의 희생자들을 그려온 그는 ‘초혼’을 표현하는 작품 ‘잠들지 못하는 남도’(2016)로 올해도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는 한편, 괴물처럼 일그러진 여성의 얼굴을 그린 ‘유체이탈’(2016)로 엉망진창인 정치 현실을 고발하기도 한다.

‘2014 여름’을 비롯해 팡리쥔의 작품에 등장하는 대머리 인물은 사회에서 허무함과 고독감을 느끼는 개인을 상징한다. 학고재갤러리 제공
‘2014 여름’을 비롯해 팡리쥔의 작품에 등장하는 대머리 인물은 사회에서 허무함과 고독감을 느끼는 개인을 상징한다. 학고재갤러리 제공
팡리쥔의 ‘무제’ 속 촛불은 ‘짐승’적인 혹은 파편화된 인간의 내면을 들추는 소재로 사용됐다. 학고재갤러리 제공
팡리쥔의 ‘무제’ 속 촛불은 ‘짐승’적인 혹은 파편화된 인간의 내면을 들추는 소재로 사용됐다. 학고재갤러리 제공

신 화백의 작품이 민중의 생명력을 드러내는 반면, 팡리쥔의 작품은 개인이 사회에서 느끼는 고독감 등 불안한 심리상태를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둔다. 1989년 등단한 팡리쥔은 사회에 대한 자조와 냉소를 미술로 표현하는 냉소적사실주의의 선두주자로, 장샤오강ㆍ쩡판즈ㆍ웨민쥔 등과 더불어 중국 현대미술의 4대 천왕으로 꼽힌다.

그의 작품에 주로 등장하는 대머리 인물들은 양감이나 무게감 없이 가볍게 처리돼 있고,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사회 구조 속에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개인의 무력감을 상징한다. 팡리쥔은 신 화백이 민중의 선한 마음을 드러내기 위해 사용한 촛불이라는 소재 역시 인간의 짐승 같은 측면이나 파편화된 내면을 들추는 도구로 사용한다.

함께 전시를 열게 된 팡리쥔의 작품을 둘러보던 신 화백은 “중국미술이 향후 발산하게 될 엄청난 에너지가 기대되는 한편 겁도 난다”며 웃었다. 유혜종 미술사가는 “아시아 미술사의 흐름이라는 넓은 관점에서 비슷한 시기 태동한 두 개의 미술사조를 심도 있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전시 의의를 설명했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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