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와 진보는 사물과 현상을 보는 관점 자체가 다르다. 세계관과 국가관의 차이가 작지 않다. 흔히 중도를 얘기하지만,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의 저자 조지 레이코프는 “중도적 진보주의자와 중도적 보수주의자가 일부 보수적이거나 진보적인 관점을 가질 수는 있으나 중도파의 이념, 즉 모든 중도파가 공유하는 관점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물론 나라와 시대에 따라 다를 수는 있으나 적실성이 있는 얘기다.
우리의 경우는 어떤가. 분단과 전쟁을 겪고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일견 상충되어 보이는 목적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이념적 간극은 국가와 시장, 자유와 평등, 성장과 복지 등의 보편적 차이를 넘는 진영 프레임으로 고착화하고 있다. 권위주의 대 민주주의, 반공 대 자유 등의 대치 구도에서 친일 논란까지 중층적으로 작용하면서 보수 대 진보는 교집합을 허용치 않는 대척의 영역이 되고 말았다.
8ㆍ15 ‘건국절’ 논란은 ‘이승만 국부론’과 맞닿아 있고, 임시정부 법통과 관련하여 이념적으로 첨예하게 대립하는 거대 담론이다. 이명박 정부 때 한나라당은 광복절을 건국절로 지정하자는 법안을 추진했다. 이후 ‘좌편향’ 교과서 논란, 역사 교과서 국정화와 함께 건국절을 둘러싼 논쟁은 진영 대결의 주요 의제로 등장했다. 제헌 헌법에는 임시정부 수립을 ‘건국’이라고 명시했고, 1948년의 정부수립을 ‘재건’이라고 천명하고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헌법 전문의 정신과 건국절 지정 주장이 정면으로 배치됨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따라서 건국절 주장은 헌법적 규범과 역사적 정통성에 부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시기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어떠한 당위도 발견할 수 없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보수 진영에서 제기하는 ‘건국절’ 주장의 의도를 알 길이 없다. 나아가 한국의 이념 지형에서 합의 도출이 사실상 불가능한 주제를 끄집어내는 저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찬반양론이 첨예하게 대립함과 동시에 진영 논리의 프레임에 갇혀버린 갈등적 주제를 특정 진영의 수장이 아닌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 때마다 제기하는 이유는 더욱 불가사의하다. 새누리당은 더 적극적이다.
정파적 논쟁을 통해 여권의 주장대로 역사관과 국가관을 정립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무지(無知)하고, 이념 논쟁으로 치달을 걸 알면서 제기한다면 무치(無恥)하다. 일단 학문 영역에서의 토론에 맡기는 게 순리다. 경제적 양극화와 사회적 격차의 심화로 인한 각자도생의 사생관은 연대 의식 붕괴와 공동체 해체라는 위기감 증대로 나타나고 있다. 건국절 주장은 이념 대결을 증폭시켜 이러한 현상을 가속화한다.
대선은 총선보다 진영 논리 프레임이 더 영향을 미친다. 사회경제적 영역의 대척점에는 안보나 국가 같은 보수 전통 영역이 포진하고 있다. 보수담론이 일상화된 현실에서 국가관, 안보관 등과 같은 어젠다가 중요해지면 선거국면에서 보수 진영에 유리하다. 대북 문제나 역사 논쟁 등 안보나 국가 담론이 지배하는 프레임은 보수가 생존하는 최적의 생태계를 제공한다. 한국의 미디어 환경에서 이런 보수적 메시지 전파는 집요하고 끈질기다.
이성과 직관 모든 측면에서 대중에 공감할 수 있는 사회경제적 어젠다를 쟁점화시키지 못한다면 진보 진영이 내년 대선에서 승리하기 어렵다. 건국절 논란은 결과적으로 정치적, 이념적 편 가르기로 귀착된다. 정치적 양극화, 갈등과 분열의 촉발을 통해 진영적 이해를 도모하는 게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구심을 받기에 충분하다.
조지 레이코프는 프레임의 ‘치명적 파괴력’을 자신의 저서에서 날카롭게 입증해 보였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는 과제를 내줬더니 단 한 명도 그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학생이 없다는 것이다. 이미 ‘코끼리’의 프레임에 갇혀 버렸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건국절 지정을 제기한 보수우파와 이에 반발하는 야권 및 진보진영의 대치와 많이 닮아 보인다. 건국절이 코끼리로 둔갑해서는 안 되지 않는가.
최창렬 용인대 중앙도서관장ㆍ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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