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이 국회에서 폐기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정부는 “플랜B는 없다”며 배수진을 치고 있지만, 만에 하나 아무런 대비 없이 추경이 무산될 경우 그 타격이 막대할 것으로 보인다.
21일 기획재정부 등 관계부처에 따르면 물리적으로 추경을 처리할 수 있는 시한은 이제 1주일 남짓밖에 남지 않았다. 정부의 내년도 본예산 편성안 국회 제출 시한(9월2일)이 바로 코 앞에 닥쳐있는 탓이다. 국회 제출 전 거쳐야 하는 청와대 보고, 국무회의 의결 등 일정을 고려하면 늦어도 이번 주 중에는 내년 예산 편성안을 최종 확정해야 하는데, 올해 추경 예산을 그 전에 처리하지 못한다면 상황은 몹시 복잡해진다. 기재부 예산실 관계자는 “내년 예산안은 추경 투입을 전제로 해서 상당 부분 구체적인 틀이 잡혔다”며 “추경이 무산되면 베이스 자체가 흔들리게 된다”고 우려했다. 더구나 내년 본예산 확정 뒤 추경이 무산되는 경우 추경에 담은 사업 예산은 내년 예산에조차 담지 못하고 붕 떠버릴 수 있다.
국회 안팎에서 ‘추경 포기’가 거론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찌감치 추경 포기를 선언하고 추경에 반영하려는 예산을 내년 본예산에라도 확실하게 반영할 기회를 줘야 한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추경안 처리 불발에 대비해 내년 예산안을 손보고 있다는 얘기들도 나오지만 이 조차도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다. 기재부 관계자는 “며칠 만에 추경과 내년 본예산을 합쳐 조정한다는 것이 실무적으로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추경은 시급성이 생명이라는 점에서 설사 내년 본예산과 합쳐서 편성된다고 하더라도 무산의 후유증은 적지않을 것으로 보인다. 당장 조선업 종사자의 고용안정 지원에 2,000억원을 투입하는 등 일자리·민생 대책으로 1조9,000억원의 재원을 배정한 부분이 기약 없이 미뤄질 수밖에 없다. 특히 중소 조선업체의 일감을 늘려주기 위해 군함이나 관공선 등을 발주해 연내 설계비로 지급하기로 한 부분도 집행이 불가능하게 된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만약 고용유지 지원금을 받지 못하게 될 경우 중소기업들은 고용 유지보다는 해고를 선택할 수밖에 없고, 이들에 대한 전직이나 이직 훈련에 들어가는 예산도 투입할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구조조정 지원을 위해 1조원이 넘는 재정을 국책은행에 출자하겠다는 계획도 미뤄지게 된다.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10% 밑으로 떨어지며 경고등이 켜진 수출입은행의 경우 타격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대우조선해양 등 구조조정이 진행중인 업체들에 대한 향후 돌발 변수를 고려하면, 출자 등으로 안전판을 빨리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기 불씨가 더욱 사그라질 거라는 우려도 크다. 국회예산정책처는 3분기에 추경을 100% 집행할 경우 올해 성장률이 0.129%포인트 높아지고, 일자리 수가 2만7,000개 늘어날 거라고 추산한 바 있다.
세종=남상욱 기자 thoth@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