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김성우 홍보수석이 19일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언론사 기자와 통화한 것을 국기문란으로 규정하고 “어떤 감찰 내용이 언제 어떻게 유출됐는지 밝혀져야 한다”고 한 발언은 사실상의 검찰 수사 가이드라인으로 볼 수 있다. 이 감찰관의 행위를 국기문란으로 인식한 박근혜 대통령이 검찰에 ‘이석수 수사’를 지시한 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수사의 공정성을 지켜줘야 할 청와대가 번번이 이를 훼손하는 데 앞장서는 것은 옳지 않다.
청와대가 이 감찰관에 대한 수사의 필요성을 적극 제기하고 나선 것은 우병우 민정수석에 대한 검찰 수사를 저지하기 위한 의도가 짙다. 청와대 발표문 어디에도 이 감찰관이 우 수석 비위와 관련해 수사 의뢰한 내용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게 이를 뒷받침 한다. 검찰에 이 감찰관 혐의는 철저히 파헤치고 우 수석 수사는 알아서 적당히 하라는 메시지를 던져준 셈이다. 청와대가 위기 때마다 검찰에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지난 2014년 정윤회 국정 농단 의혹 문건이 공개되자 박 대통령은 문건 유출을 국기 문란으로, 문건 내용을‘찌라시’로 규정해 수사 가이드라인 논란을 낳았다. 2013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과 관련해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무단 공개 논란이 일자 박 대통령은 유독 ‘사초 실종’만을 문제 삼았다. 결국 검찰은 대통령의 지시를 충실히 이행해 기소를 강행했지만 두 사건 모두 법원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그런데도 ‘수사 청부’를 한 청와대나 무리한 수사를 한 검찰이나 사과하거나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번에도 궁극적으로 비슷한 경로를 거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많다. 청와대가 우 수석을 적극적으로 감싸는 마당에 검찰이 대통령의 뜻을 거스르고 강공을 펼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 검찰 내부에서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 검찰이 뭘 할 수 있겠느냐”는 자조 섞인 반응이 주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이런 현실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이번 사태로 또다시 시험대에 오른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다. 검찰은 이미 진경준 검사장 비위사건, 홍만표 변호사의 법조비리 의혹으로 신뢰가 바닥에 떨어졌다. 국회에서는 검찰 권한을 축소하게 될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립 법안이 여러 건 발의돼 있다. 우 수석에 대한 ‘봐주기 수사’로 또다시 국민의 신뢰를 잃게 되면 검찰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게 된다. 검찰의 존폐가 이번 수사에 달려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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