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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3만보 노동에… 쉴 곳은 다리도 못 펴는 화장실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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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3만보 노동에… 쉴 곳은 다리도 못 펴는 화장실칸

입력
2016.08.2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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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158명 하루 11시간 근무

노조 결성 전엔 쉬는 시간도 없어

휴게실ㆍ위생시설 제공 안 지키고

용역업체는 이마저도 철거 방침

아이스크림 사먹다 경위서 쓰고

한달 입원하면 무조건 퇴사처리

국회의원들 공항 사장 방문했지만

이후 공항 곳곳엔 법적대응 공문

김포국제공항 청소노동자 김은숙씨가 19일 국내청사 1층 여성화장실 간이휴게실에서 두루마리 화장지 더미 위에 앉아 잠시 쉬고 있다.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김포국제공항 청소노동자 김은숙씨가 19일 국내청사 1층 여성화장실 간이휴게실에서 두루마리 화장지 더미 위에 앉아 잠시 쉬고 있다.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19일 오후 4시 서울 강서구 김포국제공항 국내청사 1층 여자화장실 한 칸에 청소노동자 박연심(56)씨가 들어갔다. 올해로 9년 차인 박씨는 두루마리 화장지 더미 위에 잠시 엉덩이를 붙인 뒤 청소물품을 정리했다. 일과 11시간 중 앉아 있을 수 있는 시간이 한 시간밖에 되지 않아 이렇게 물품을 정리하는 동안 짬을 내 지친 다리를 쉬게 한다.

이 공간은 청소노동자들의 간이 휴게실이기도 하다. 4시간 노동 후 30분씩 주어지는 휴식시간에 청소노동자들은 공항 구석구석에 마련된 화장실 한 칸에서 잠시 숨을 돌린다. 가뜩이나 좁은 휴게실 안에 청소도구, 세제 등이 빼곡히 들어차 있어 다리를 뻗을 수도 없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박씨는 “그나마 이렇게라도 잠시 엉덩이를 붙일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올해 3월 노동조합이 결성되기 전에는 잠깐의 쉬는 시간도 없이 11시간 내내 일만 해야 했기 때문이다.

김포공항 비정규직 청소노동자들이 사측 관리자들의 인권유린과 열악한 근무환경을 호소하고 있다. 청소노동자들에 대한 인권침해는 올해 5월 노조가 용역업체 관리자들의 성추행 사실을 폭로하면서 수면위로 떠올랐다. 노조에 따르면 용역업체 관리자들은 2012년부터 최근까지 노동자들의 가슴을 멍이 들도록 만지거나 강제로 키스를 했다. 또 “아들이 둘이면 성관계는 두 번만 한 거냐” 등 성희롱도 서슴지 않았다. 이달 9일 청소노동자들의 국회정론관 기자회견과 12일 한국공항공사 앞 삭발식을 기점으로 논의는 더욱 확장됐다. 당시 김포공항 비정규직 청소노동자들은 상식을 벗어난 열악한 노동 처우 등을 세상을 향해 온몸으로 고발했다.

김포공항 청소노동자 158명은 오전 조(오전 6~오후 5시)와 오후 조(오전 11시30분~오후 11시)로 나뉘어 3조2교대 근무를 한다. 국내청사, 국제청사, 화물청사를 나누고, 이를 다시 층마다 3구역으로 분할한 뒤 각자의 담당 구역에 속해있는 화장실, 흡연실, 대합실 등을 끊임 없이 돌며 청소한다.

박씨도 19일 오후 8시10분 국내선 1층 남자화장실에 들어가 수세미로 변기 10여개를 닦은 뒤 각 칸마다 화장지를 갈아 끼우고 세면대와 바닥을 청소했다. 그는 같은 방식으로 여성화장실과 장애인화장실을 청소하고 곧바로 흡연실로 이동해 재떨이 7개를 비웠다. 대합실로 나온 박씨는 휴지통 8개에 가득 찬 쓰레기를 분리수거 한 뒤 에스컬레이터를 닦고 쓰레기봉투를 외부 하치장에 버렸다. 이렇게 한 바퀴를 도는데 1시간20분이 걸렸다.

하지만 박씨는 잠시도 쉬지 못하고 다시 남자화장실로 돌아갔다. 화장실 바닥은 더러운 구정물로 뒤덮여있고 화장지도 부족했다. 그야말로 청소의 무한반복이었다. 청소노동자들은 이렇게 11시간 동안 일하며 최대 3만보를 걷는다.

그럼에도 김포공항 내에는 이들이 다리를 뻗고 쉴만한 공간이 없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사측은 노동자들을 위해 휴게실과 세면장 등의 위생시설을 제공해야 하지만 이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은 사실상 화장실 내 휴게실이 전부였다.

이마저도 폐쇄될 위기에 처했다. 김포공항 미화 용역업체인 지앤지(G&G)는 이달 9일 “임시 휴게실로 사용 중인 장소(화장실 휴게실)가 물품창고로 지정돼 있으니 개인 물품을 정리해달라”는 공고문을 붙였다. 실제 사측은 간이 휴게공간에 비치돼있던 의자와 선풍기를 압수해갔다. 공공비정규직노동조합 서경지부 정진희 사무국장은 “휴게 공간이 열악하다는 것을 외부에 알렸더니 되레 휴게공간을 철거하겠다고 협박했다”고 주장했다.

사측은 이미 공항 내에 12곳의 정식 대기실이 있다는 입장이다. 손경희 서경지부 강서지회장은 “사측이 말하는 대기실은 청사 밖에 위치해 있는 등 근무장소에서 10~15분 떨어져 있어, 오가다 보면 휴식 시간 30분이 다 끝난다”고 설명했다.

휴게공간 외에 노조가 요구하는 것은 용역근로자 보호지침 준수다. 김포공항 청소노동자들은 30년 넘게 근무해도 최저임금을 받는다. 용역근로자 보호지침에 따르면 공공기관 청소미화 업무는 올해 기준 시급 8,200원을 받아야 하고, 상여금은 400% 이내에서 책정해야 한다. 그러나 이들은 시간당 6,030원을 받고 실제 지급받는 상여금도 175%에 불과하다.

기본적인 권리도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지만, 이날만큼은 이들도 잠깐이나마 환하게 웃었다.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소속 국회의원 6명이 공항을 방문해 성일환 한국공항공사 사장과 면담을 했기 때문이다. 청소노동자 10여명은 국희의원들의 공항 방문에 맞춰 오후 7시30분 국내선 청사 1층 라운지에서 조촐한 아이스크림 파티를 열었다.

이들에게 아이스크림 파티는 의미가 깊다. 2년 전 누군가 건네준 1만원으로 노동자 8명이 아이스크림을 사먹었다가 시말서(경위서)를 쓴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경위서가 3번 누적되면 퇴사를 해야 했다. 이모(53)씨는 “사회적 관심이 쏟아지지 않았다면 이렇게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며 웃었다. 그는 또 “노조 결성 전에는 병원에 입원하기 전 사측에 미리 사직서를 제출했다가 입원 기간이 한 달을 넘으면 무조건 퇴사 처리됐다”며 “그 때문에 한쪽 다리를 절면서 일을 하는 등 노동여건이 지금보다 훨씬 더 안 좋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의 웃음은 만 하루를 채 넘기지 못했다. 20일 다시 노사간 아슬아슬한 줄다리기가 반복됐다. 전날 국회의원 방문에 성 사장이 휴게공간 마련을 약속한 뒤 손 지회장을 부둥켜 앉고 “소통”이라고 외쳤지만 의원들이 돌아간 후 공항 곳곳에는 법적 대응을 암시하는 공문이 붙었다. 청소노동자 박모(52)씨는 “이미 수 차례 같은 말을 반복했지만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었다”며 “사측이 정치인들 앞에서 ‘퍼포먼스’를 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정 사무국장은 “사측과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며 “26일 전면파업을 통해 기본권리를 되찾을 방침”이라고 말했다.

박주희 기자 jxp938@hankookilbo.com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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