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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는 족구왕과 범죄의 여왕이 있다

입력
2016.08.20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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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창작집단 광화문 시네마의 우문기(왼쪽부터) 이요섭 권오광 감독, 김지훈 프로듀서, 전고운 감독, 김보희 프로듀서, 김태곤 감독이 신작 영화 '범죄의 여왕' 개봉을 앞두고 한자리에 모였다. 최재명 인턴기자
영화창작집단 광화문 시네마의 우문기(왼쪽부터) 이요섭 권오광 감독, 김지훈 프로듀서, 전고운 감독, 김보희 프로듀서, 김태곤 감독이 신작 영화 '범죄의 여왕' 개봉을 앞두고 한자리에 모였다. 최재명 인턴기자

광화문에서 충무로 방향으로 새 바람이 불고 있다. 서울 북촌 인근의 작은 작업실에 자리잡은 영화창작집단 ‘광화문 시네마’가 바람의 근원이다. 김태곤(36) 이요섭(34) 권오광(33) 우문기(33) 전고운(31) 감독과 김지훈(37) 김보희(33) 프로듀서 등 젊고 재기발랄한 영화인재들이 동고동락하고 있다.

7인방이 한자리에 모이면 동네 반상회 마냥 시끌벅적 수다와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오고 가는 대화의 쿵짝이 아주 잘 맞는다. 그들은 그렇게 손발 맞춰 영화를 함께 만든다. 한 사람이 연출을 맡으면 나머지는 제작, 각색, 프로듀싱, 자문, 섭외를 나눠 맡고, 그도 안 되면 허드렛일이라도 돕는다. 품앗이 제작 방식인 셈이다. 시나리오마다 일곱 명의 아이디어가 고루 담긴다. 그렇게 십시일반 만들어진 영화가 김태곤 감독의 ‘1999, 면회’(2013)와 우문기 감독의 ‘족구왕’(2014)이다.

광화문 시네마가 세 번째 영화 ‘범죄의 여왕’(25일 개봉)을 내놓는다. 단편영화 ‘더티혜리’와 ‘다문 입술’로 범상치 않은 재능을 빛낸 이요섭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아들이 사는 고시원에서 수도요금 120만원이 나오자 이를 해결하러 나선 아줌마 미경(박지영)이 주인공이다. 오지랖 넓은 미경은 탐문 수사하듯 고시원 곳곳을 들쑤시고 다니고 그 과정에서 뜻밖의 사건과 마주한다. 코믹 스릴러 같기도, 탐정 수사물 같기도 한 독특한 질감의 이야기 안에 개성 있는 캐릭터들이 팔딱거린다. 이 감독을 응원하기 위해 총출동한 광화문 시네마 식구들을 지난 16일에 만났다.

배우 박지영과 조복래가 호흡을 맞춘 '범죄의 여왕'은 광화문 시네마의 세 번째 작품이다. 콘텐츠판다 제공
배우 박지영과 조복래가 호흡을 맞춘 '범죄의 여왕'은 광화문 시네마의 세 번째 작품이다. 콘텐츠판다 제공

꿈꾸는 영화공동체

‘범죄의 여왕’에서도 이들은 크레딧 안팎을 부지런히 드나들며 힘을 보탰다. 김보희 프로듀서가 “전체 제작 진행”을 도맡았고, 김태곤 감독은 “영화 제목을 지었다”. 우문기 감독은 “보조출연 반장 및 응원단장”, 권오광 감독은 “신랄한 비평과 잔소리 담당”이었다. 맏형 김지훈 프로듀서는 “제작 현장의 고민을 들어주는 ‘대나무숲’이자 자잘한 어려움을 뒤치다꺼리하는 평화유지반”이라고 자신의 역할을 소개했다. 전고운 감독은 “시나리오 각색과 이요섭 감독의 아내로 활약”했다. ‘족구왕’의 안재홍, 황미영, 강봉성 등 광화문 시네마와 인연 깊은 배우들도 보조출연 반장 우 감독의 전화에 한달음에 달려와 카메오 출연했다.

사공이 많지만 배가 산으로 갈 염려는 없다. 공동 작업이어도 감독의 뜻을 최우선 존중하고 따른다. “결과가 좋든 나쁘든, 결국 선택의 책임은 감독에게 있죠. 하지만 모두가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는 구조라서 다행히 잘못된 방향으로 가지는 않는 것 같아요.”(이 감독)

‘범죄의 여왕’은 이 감독이 어머니와의 일화에서 소재를 얻었다. 몇 년 전 3개월간 집을 비웠는데도 수도요금 50만원이 나와 전전긍긍했던 적이 있단다. 그때 어머니가 조폭들이 운영하던 관리사무소를 직접 찾아가 문제를 뚝딱 해결해내는 모습에 감탄했고, 그 경험이 영화의 바탕이 됐다. “엄마라는 캐릭터를 희생적인 이미지로 한정 짓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능동적으로 사건을 해결해가는 멋있는 엄마를 그려보고 싶었어요. 무채색 고시촌에 활기를 불어넣으며 그곳의 사람들을 변화시켜 가는 거죠.”(이 감독)

공부에 방해가 된다는 아들의 타박에도 탐문을 멈추지 않는 미경은 그 과정에서 만난 아들딸 같은 고시생들에게 손수 밥을 지어 먹이고 다정하게 이름을 불러준다. 퍽퍽한 현실에 분투하는 젊은 세대가 기성세대에게 바라는 건 미경의 소박한 밥 한 끼 같은 따뜻한 관심이 아닐까. 스무 살 친구들의 군대 이야기 ‘1999, 면회’와 복학생의 유쾌한 캠퍼스 적응기 ‘족구왕’, 그리고 고시촌 풍경을 담아낸 ‘범죄의 여왕’까지, 광화문 시네마는 청춘의 오늘을 긍정 어린 시선으로 들여다본다.

광화문 시네마는 영화 ‘1999, 면회’(위) 제작을 계기로 만들어져 두 번째 영화‘족구왕’으로 이름을 알렸다. 인디스토리·KT&G상상마당 제공
광화문 시네마는 영화 ‘1999, 면회’(위) 제작을 계기로 만들어져 두 번째 영화‘족구왕’으로 이름을 알렸다. 인디스토리·KT&G상상마당 제공

한국영화 대안으로 부상

광화문 시네마 7인방은 그들 영화 속 주인공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족구가 좋아서 족구를 하다 족구왕이 된 ‘족구왕’의 만섭(안재홍)처럼, 영화가 좋아 영화를 공부하며 함께 영화를 만들다 오늘날의 광화문 시네마까지 이르렀다. 김지훈 프로듀서를 제외한 여섯은 한예종 영상원 전문사(대학원) 동기로 만났다. 제작비 1,000만원으로 만든 ‘1999, 면회’가 이들을 하나로 묶었다. 김 감독의 시나리오를 본 전 감독이 장편 제작을 제안했고, 우 감독이 미술감독으로 참여했다. “품앗이 제작 형태가 정신적으로 의지도 되고 효율성 면에서 굉장히 좋더라고요. 이런 협업이 지속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작업실을 차렸어요. 제가 도움 받은 만큼 친구들을 돕고 싶었습니다.”(김 감독)

당시 시나리오 작업을 주로 전 감독의 집에서 했는데, 위치가 광화문 인근이라 광화문 시네마라 이름 지었다. 김 감독 전 감독이 공동대표다. “부산영화제에 영화를 출품하려는데 제작사 이름을 써넣어야 해서 급조했죠. 장충동 족발, 마산 아구찜, 평양 냉면 같은 거예요.”(김 감독) “작업실 월세를 내려면 5명 정도는 있어야 하잖아요(웃음). 원래 친분이 있던 친구들이 자연스럽게 작업실에 모였어요.”(우 감독) 김지훈 프로듀서는 김 감독과 중앙대 독어과 동기로, 10년간 상업영화 작업을 하다 김 감독의 제안으로 광화문 시네마에 합류했다.

광화문 시네마는 대형 투자배급사 중심의 한국영화계에 일종의 대안으로 받아들여진다. “저희를 좋게 봐주는 시선들이 고맙기는 한데, 사실 저희의 작업 형태는 필요에 의해 시작된 거예요. 아무리 규모가 작은 영화여도 장편영화는 지원을 받지 않으면 만들기 어려워요. 유명 감독들처럼 이름을 내걸고 투자를 받을 수 없다면, 차라리 창작집단 레이블로 알려보자는 생각이었죠. 이제는 구구절절 설명을 하지 않아도 광화문 시네마라는 명함으로 투자자들에게 신뢰를 주니까, 그런 점에선 편의성이 생긴 것 같아요.”(김 감독)

광화문 시네마 작품에는 차기작을 알리는 쿠키 영상이 꼭 붙는다. ‘1999, 면회’에 삽입된 ‘족구왕’ 쿠키 영상이 온라인에서 화제몰이를 하면서 제작비가 1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쿠키 영상이 실제로 제작에 큰 도움이 돼요. 그걸 바라고 넣은 것이기도 하고요. 광화문 시네마의 트레이드마크로 계속 이어갈 생각입니다.”(김보희 프로듀서)

광화문 시네마 밖에서 권오광 감독은 ‘돌연변이’(위)를, 김태곤 감독은 ‘굿바이 싱글’을 각각 연출하며 대중의 시선을 모았다. CJ E&M, 쇼박스 제공
광화문 시네마 밖에서 권오광 감독은 ‘돌연변이’(위)를, 김태곤 감독은 ‘굿바이 싱글’을 각각 연출하며 대중의 시선을 모았다. CJ E&M, 쇼박스 제공

꾸준히 영화 만드는 것이 목표

‘족구왕’이 독립영화로서는 이례적으로 관객 4만 6,000명을 모으면서 ‘범죄의 여왕’에게도 한층 윤택한 길이 열렸다. 순제작비 4억원으로 덩치도 커졌다. ‘범죄의 여왕’ 또한 차기작으로 예정된 전 감독의 ‘소공녀’를 위해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 ‘현대판 거지’라는 부제가 달린 ‘소공녀’는 담배와 위스키를 유일한 낙으로 여기는 30대 여성 가사도우미가 담뱃값 인상으로 인해 생활고를 겪으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최초로 만장일치를 받은 시나리오”라고 한다.

권 감독과 김 감독은 광화문 시네마 밖에서도 영화를 만들었다. 권 감독은 지난해 ‘돌연변이’를 연출했고, 김 감독은 지난 6월 개봉한 ‘굿바이 싱글’로 210만 관객이라는 흥행의 맛을 봤다. 독립영화와 상업영화를 자유롭게 오가는 광화문 시네마의 미래가 더더욱 궁금해진다.

“그냥 한 작품씩 만들다 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처음 시작할 때도 거창한 목표나 원대한 계획이 있었던 게 아니었어요. 앞으로 어떻게 될지 저희도 궁금해요.”(권 감독) “상황이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투자를 받을 때는 어려움이 있어요. 따뜻한 시선은 있지만 따뜻한 돈은 없다고 할까요(웃음).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더 단단해지는 것 같습니다. 각자의 취향과 개성이 드러내는 영화를 꾸준히 만들고 싶습니다.”(김 감독)

강은영 기자 kiss@hankookilbo.com,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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