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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대법관 손에 달린 복지정책

입력
2016.08.1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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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도서관에 걸린 '청년수당' 홍보현수막./배우한기자bwh3140@hamkookilbo.com
서울도서관에 걸린 '청년수당' 홍보현수막./배우한기자bwh3140@hamkookilbo.com

올해 초 내가 사는 성남시로부터 15만원을 받았다. 중학교에 입학한 아이에게 주는 교복구입비였다. 청년배당, 산후조리비와 함께 공짜논란을 빚었던 성남시 3대 무상복지, 그 중 하나인 무상교복정책의 수혜자가 된 것이다. 온전히 공짜교복은 아니었고, 교육부가 책정한 교복단가(28만5,000원)의 절반을 받았다.

뜻하지 않는 돈에 살짝 기분은 좋았으나, 이런저런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15만원이 아주 절실하지는 않은 나보다는, 차라리 정말로 교복 마련이 힘든 아이들에게 돈을 몰아주는 편이 낫지 않을까. 다만 현재의 행정력으로 절실한 사람과 절실하지 않은 사람을 정확히 가려낼 수 있을까. 못 받은 사람들의 불만으로 선의가 되레 분란만 낳는 건 아닐까. 무엇보다 15만원이 아니라 30만원 혹은 50만원이어도 내가 이런 박애적 생각을 했을까. 난 지금도 무상교복 정책이 좋고 나쁨에 대해 확신이 서지 않는다.

당시 정부는 성남시 무상정책을 포퓰리즘으로 규정, 경기도를 통해 대법원에 무효소송을 냈다. 법적 시비는 아직 가려지지 않은 상태인데, 대법원에는 또 하나의 복지정책이 올라왔다. 이달 초 정부가 서울시 청년수당에 대해 직권취소조치를 내린 것과 관련, 19일 서울시가 대법원에 반대소송을 낸 거다.

개인적으론 청년수당이 썩 좋은 정책이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물론 서울시의 선의를 의심하는 건 아니다. 일하고 싶어도 일하지 못하는 딱한 청년들에게, 일을 더 하고 싶어도 하루 5~6시간 이상은 일할 수 없고 그래서 월급을 받아도 밥값과 교통비 빼고 나면 남는 게 없는 아픈 청춘들에게 한 달에 50만원씩, 그것도 최장 6개월까지만 나눠주는 게 정말로 잘못인가라고 묻는다면 딱히 반박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수혜자가 한정된 정책은 언제나 기준과 형평이 문제가 된다. 서울시는 1차로 2,800여명을 선정했지만, 뽑힌 사람들의 만족보다는 떨어진 사람들의 불만이 더 크게 들린다. 서울에 장기 거주했는데도 주민등록지가 지방이어서 안됐다느니, 맨 공무원시험 준비생들만 지원했다느니, 이 돈을 어디에 썼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느니…. 듣고 보면 틀린 얘기들도 아니다.

청년수당예산은 총 90억 원. 차라리 예산을 열 배쯤 늘려 서울시가 직접 일자리를 만드는 편이 어땠을까 싶다. 어차피 민간 일자리창출이 정체된 시기엔 공공부분이 다소는 비효율적이라도, 설령 한 사람이 해야 할 일을 두세 명이 나눠 하는 한이 있더라도 일자리를 직접 만들어 주는 게 옳다고 본다. 아니면 빵 보다는 빵 굽는 방법이 낫다는 취업지원 철칙에 맞춰, 좀 더 파격적이고 수준 높은 취ㆍ창업 교육시스템을 구축했어도 좋았겠다. 그런 점에서 청년수당정책은 너무 손쉽고, 조금은 무성의하다는 느낌까지 들게 한다.

하지만 이 모든 한계에도 불구하고, 청년수당을 기어코 좌초시키려는 중앙정부의 태도는 더욱 이해할 수 없다. 정부는 처음엔 정책자체를 비판하다가 나중엔 절차위반을 들어 이미 돈까지 나눠준 정책을 강제 중단시켰는데, 이거야 말로 속 좁은 오기로 보인다.

우리나라 복지는 이제 첫발을 내딛는 수준이다. 누구도 무엇이 최선인지 모른다. 오랜 복지국가경험에서 만들어진 독일 프랑스의 청년수당이, 혹은 스위스의 기본수당이 우리나라에서도 작동할지는 장담할 수 없다. 때문에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건 좀 더 많은 실험이다. 중앙정부는 중앙정부대로, 지방정부는 지방정부대로, 다양한 복지정책을 시도해 봐야 한다. 정책도 경쟁을 시켜 성공한 건 확산시키고 실패한 건 폐기시켜야 한다. 실패엔 예산낭비가 따르겠지만 그 자체가 복지국가로 나아가는 비용이고, 책임은 각급 의회나 선거를 통해 물으면 된다. 중앙정부 공무원들도 정답을 모르면서, 대도시부터 시골까지 하나의 길만 강요하는 건 정말로 무책임한 일이다.

복지정책을 대법관이 정하는 나라가 되어선 안 된다. 서울의 청년수당도, 성남의 무상시리즈도 일단은 좀 더 해보고 판단하는 게 옳다고 본다.

이성철 부국장 sc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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