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한다, 고로 철학한다
팀 르윈스 지음ㆍ김경숙 옮김
MID 발행ㆍ388쪽ㆍ1만5,000원
내가 운영자인 페이스북 그룹 ‘과학책 읽는 보통 사람들’ 게시판에서는 종종 논쟁이 벌어진다. 말이 ‘보통’ 사람이지 이곳 저곳 숨어있는 전문가들과 과학 마니아들이니 치열한 공방전인데, 그 수준이 예사롭지 않을뿐더러 매우 생산적인 측면이 많다. 일부 감정적으로 흐르는 경우는 거의 예외 없이 과학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과 회의, 인문학적 문제제기가 됐을 때다. 논쟁 당사자간 감정의 골이 깊게 패이고 쉽게 봉합되지 않는다.
“조류학이 새에게 유용한 만큼만 과학철학은 과학자에게 유용하다.” 과학철학에 대한 과학자의 냉소적 입장을 드러낸 이 유명한 클리셰는 리처드 파인만의 발언으로 알려져 있다(사실 근거는 불분명하다). 자신의 정체성을 ‘과학자’로 보는 사람들, 과학주의자 혹은 과학만능론자들은 과학철학에 대체로 비판적이며 때로 적대적이기까지하다. 저자 팀 르윈스의 표현대로 “때때로 과학자들은, 마치 말처럼, 눈가리개가 씌어져 있을 때 가장 잘 전진한다”는 게 그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정말 과학철학은 과학발전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군더더기, 혹은 과학연구의 발목잡기 학문일까? 영국 케임브리지대 과학철학 교수인 팀 르윈스가 쓴 이 책을 읽고 나면 과학철학에 대한 이런 생각들이 대체로 몰이해와 편견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1부는 ‘과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하며 과학의 방법론에 중점을 둔 과학철학의 개요를 다룬다. 과학과 비과학을 나누는 기준은 무엇인가, 경제학이나 동종요법이나 지적설계론 같은 것들도 과학이라 말할 수 있는가, 또 과학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가, 아니면 과학자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 의해 조건지어져 있는가 등의 문제에 대해서도 논의한다.
1부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과학철학의 전설이라고 할 수 있는 두 철학자, 칼 포퍼와 토마스 쿤의 대결이다. 그는 포퍼에 대한 쿤의 비판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쿤의 과학에 대한 이해를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저자는 정상과학기와 과학혁명기의 패러다임 쉬프트를 인정한다. 문제는 어떤 연구가 정상과학인지 아니면 혁명기의 전복적 연구인지를 구분하는 것인데 이건 우주 자체에 대한 이론이나 물리학 같은 것에서는 명확한 반면 물리학과 동떨어져 있는 생물학 같은 분야에서는 적용이 불가능하다. 이 점에서 쿤의 철학은 한계에 봉착한다.
이 책의 2부에서 저자는 야심 찬 과학자들 즉 심리학자, 뇌과학자, 진화론자, 신경과학자들이 인간의 도덕성이나 자유의지 등 전통적으로 인문학 영역에 속했던 주제들에 대해 어떤 방향으로 연구 결과를 축적해 가고 있으며 거기에는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검토한다. 거울 없이 스스로의 얼굴을 볼 수 없듯이 철학 없이 과학의 자기 성찰은 불가능하며 메타과학으로서의 과학철학의 역할은 커질 수 밖에 없다. 더 나아가 저자는 과학철학의 가치가 과학자들에게만 도움이 되는 것으로 한정할 수 없으며 과학철학은 경제적, 문화적, 정책적 가치를 넘어서 인류에게 현실적으로 가장 중요한 핵심 가치를 다루고 있음을 우리에게 훌륭히 납득시키고 있다.
과학책 읽는 보통 사람들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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