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지 다끄네 고내 판포 등 아담한 바닷가
큰 해수욕장 아니라도 여름바다 재미 한 가득
현기영의 작품 ‘지상에 숟가락 하나’엔 작가의 어린 시절, 용두암 옆 바다와 민물이 만나는 용연계곡에서 물에 뛰어들며 한여름을 보내던 이야기가 나온다. 어린 시절을 제주에서 보냈던 지인의 추억 속에는, 지금의 탑동이 매립되기 전 멀지 않은 거리의 바위섬까지 내기 수영을 하며 보내던 한여름의 풍경이 자리하고 있었다. 당연하지만, 제주의 여름은 바다를 떼놓고 할 수 있는 이야기 거리가 많지 않다.
한 시즌 차려놓은 해수욕장이나 해수풀장에서 바다를 즐기던 육지에서 제주로 입도하니 첫 여름의 독특한 인상 중 하나는 작은 포구마다 몸을 검게 그을린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다이빙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내리쬐는 햇볕아래 아무런 해가림 없이 반바지만 입고 저마다의 다이빙 솜씨를 뽐내며 바다로 뛰어드는 모습은 날것 그대로의 자연스러움이었다. 쉴 새 없이 바다로 뛰어들던 아이들 너댓이 등으로 햇볕을 받아내며 포구에 나란히 걸터앉아 바다를 바라보는 모습은, 실재하지 않는 내 어릴 적 추억의 어떤 조각을 이끌어내려는 아련함이기도 했다.
제주에도 드넓은 백사장이나 아기자기한 풍경의 해수욕장이 있다. 무리 없이 물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시즌이 되면, 가까운 해수욕장으로 달려가 사람들과 이런저런 편의시설들과 함께 바다를 즐길 수도 있다. 하지만, 제주의 여름은 날 것 그대로의 바다, 그러니까 가까운 포구의 물 맑은 바다에 뛰어들며 즐기는 재미가 쏠쏠하다. 적당한 수심과 수온에서 스노클링 장비를 가지고 바닷 속 구경도 자유로이 할 수 있다. 힘들면 포구 난간에 올라 앉아 잠시 쉬면서 여름 한 낮의 정경을 즐길 수 있다. 몇 가지 주의점만 지키고 조심한다면, 통제 없는 자유와 준비 없는 날 것 그대로의 여유를 누리는 제주만의 여름 물놀이가 완성되는 것이다.
여름 한복판의 쉬는 어느 날의 오후, 나는 스노클링 장비를 챙기고 아내와 아들은 부력조끼를 챙긴 다음 차를 몰아 어느 포구로 향한다. 우리 가족만의 나들이가 되기도 하지만 종종 지인 가족들과의 동반나들이가 되기도 한다. 물놀이는 역시 여럿이 모여 즐기는 것이 더 재밌다. 멀리는 토산의 한적한 작은 포구로, 이제는 너무도 북적이는 외돌개옆 황우지 해안으로 향하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너무 멀지 않은 곳에서 물놀이를 즐긴다. 용담해안도로의 다끄네 포구도 좋고 고내의 작은 포구도 좋지만, 요즘은 판포에 자주 가곤 한다. 이곳은 낮은 방파제가 길게 뻗어 있고 안으로 충분히 넓고 적당히 깊은 물놀이 공간이 형성되어 반나절을 무리 없이 즐길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엔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모인다는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스노클링 장비를 한 나와 부력조끼와 물안경을 착용한 아들은 손을 잡고 한여름의 바닷속을 구경한다. 물결대로 투명한 햇살이 바닥을 비추는 모래뻘에는 알 수 없는 생물이 만든 수많은 구멍이 보이고 때로는 손바닥만한 게가 정신 없이 달려나가기도 한다. 학공치나 멸치떼를 만나면 그것 그대로 광경이 되고 팔뚝만한 숭어떼라고 만나면 아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그러다 바위층을 만나면 커다란 보말과 그 사이사이로 몸을 숨긴 놀래기 볼락 쥐치들을 구경하며 자연 그대로를 느낀다. 포구에서의 물놀이는, 이렇게 다양한 자연 그대로의 물속을 어렵지 않게 감상하며 즐길 수 있다는 데 커다란 장점이 있다.
물놀이는 언제나 조심해야 하며 안전장비는 필수이다. 순간의 방심이 심각한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다. 포구는 마을사람들의 터전이기도 해서 마찰을 일으킬 만한 행동을 해서도 안된다. 이런 몇 가지만 인식한다면, 한여름 제주바다의 경험은 작은 포구안 바다로 뛰어드는 데서 정점을 찍는다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통제나 시설 없이도 어린 시절을 재미지게 보냈던 우리의 아련한 추억을 되새겨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비 한 방울 없이 뜨겁기만 하던 바다도 이제 차가워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좀 더 아쉬워지기 전에, 한 번이라도 어서 바다로 달려가 뛰어들어야겠다는 조급함이 커진다. 마음만 먹으면 단 몇 분간의 이동으로 닿는 거리에 당장 뛰어들 수 있는 바다, 여기는 제주이다.
전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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