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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점 많은 세 친구, 제주를 여행하다

입력
2016.08.19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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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 배우 박희순(왼쪽부터)과 신하균, 오만석이 영화 ‘올레’에서 연기 호흡을 맞춘다. (주)대명문화공장 제공
중년 배우 박희순(왼쪽부터)과 신하균, 오만석이 영화 ‘올레’에서 연기 호흡을 맞춘다. (주)대명문화공장 제공

나란히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세 남자가 있다. 서른 아홉 살 대학동기인 이들은 각자의 사연을 숨긴 채 대학 선배 부친의 장례식장으로 향한다.

각자의 사연은 이렇다. 노총각에 부양가족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희망퇴직 권고를 받은 대기업 과장 중필(신하균)은 머릿속이 복잡하다. “회장의 바짓가랑이라도 잡고 빌어보라”는 상사의 제안이 야속하고 개탄스럽기만 하다. 공항에 나오기 전날까지 매일 유언장을 쓰고 죽음을 결심하는 수탁(박희순)은 지난 13년간 고시준비생으로 살았다. 결혼도 하고 사회에서 기반을 가질 만한 30대 후반의 나이지만, 그에겐 꿈 같은 얘기다. 5평 남짓한 옥탑방에서 수많은 책에 둘러싸여 사는 게 그의 현실이다.

그나마 둘보다 조금 나아 보이는 은동(오만석)은 케이블 보도전문채널 뉴스의 앵커다. 하지만 그도 건강상의 이유로 뉴질랜드 이민을 결정하고 마지막 방송을 소화했다. 그렇다고 내색할 순 없다. 방송국의 간판 앵커이자, 친구들의 자랑 아닌가.

‘아홉 수’에라도 걸린 듯한 세 남자에게 어쩌면 제주도는 액을 물리칠 수 있는 기운이 샘솟는 파라다이스 같은 존재다. 중필은 선배와 결혼한 첫 사랑 선미를 만날 수 있다는 낭만에 젖어있고, 은동은 친구들과 어울리며 학창시절로 돌아가 마음의 치유를 받고자 한다. 수탁은 공부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하룻밤만이라도 ‘만리장성’을 쌓고 싶어 한다.

수탁은 ‘잘 나가는’ 두 친구에 의지해 빨간 스포츠카를 빌리고, 자연산 다금바리를 잘근잘근 씹으며 값비싼 호텔에서 4박5일을 보낸다는 꿈을 꾸는 데 세 남자의 지질한 현실이 호락호락 ‘럭셔리 여행’을 허락할 리 없다.

영화는 호텔 대신 ‘티티카카’라는 게스트하우스에 묵게 된 세 남자가 생각지도 못한 자유와 낭만, 사랑 등 일탈에 가까운 여행을 하는 과정을 유쾌하게 버무려냈다. 특히 신하균과 박희순의 ‘케미스트리’는 영화의 보석이다. 둘은 “이 XX야!” “XX놈아!” “병X 죽고 싶냐!” 등의 욕을 주고 받으며 긴장감을 유도하다가도 “(돈을 주며)이걸로 신발이나 사, 이 XX야” “너나 몸 잘 챙겨” 등의 대사를 주고 받으며 끈끈한 정을 드러낸다.

박희순의 파격 코믹 연기가 볼거리다. 동네 미용실에서 했을 법한 ‘빠글빠글’ 퍼머 머리에 차진 욕을 입에 달고 다니며 분위기를 주도한다. 박희순은 그간 영화 속에서 보여주지 않는 새로운 매력을 발산한다. 영화 ‘용의자’와 ‘간기남’ ‘의뢰인’ ‘작전’ 등에서 보여준 진지하고도 선 굵은 연기가 ‘올레’에선 껍질을 벗은 듯 한결 가벼워졌다.

시원한 액션이나 허를 찌르는 반전을 기대하긴 어려운 영화. 하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제주 여행의 시원함을 느끼고픈 관객이라면 실망하지 않을 듯하다. 채두병 감독의 데뷔작이다. 25일 개봉, 15세 관람가.

강은영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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