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솔한 여행자
르네 바르자벨 지음·박나리 옮김
은행나무 발행·320쪽·1만3,000원
시간여행은 역사에 개입하고자 하는 욕망이다. 기실 우연의 축적들인 역사를 필연의 서사로 교정하기 위해 SF 소설가들은 타임슬립이라는 장치를 마련했다.
프랑스 SF소설의 선구자로 불리는 르네 바르자벨(1911-1985)의 ‘경솔한 여행자’(1944)는 SF 장르가 핵심서사로 곧잘 활용하는 타임패러독스 중 ‘할아버지 패러독스’를 다룬 최초의 소설로, 인류를 불행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서기 10만년의 미래와 나폴레옹 전쟁 당시의 과거로 양방향 시간여행을 떠난다. 할아버지 역설이란 시간 여행자가 과거로 가 자신의 조상을 살해하면 시간 여행자는 태어날 수 없게 되고, 그렇다면 시간 여행 자체가 불가능해지므로 조상을 살해할 수 없다는 역설을 말한다. “인류의 행복이란 인간 각자가 자신의 행복을 스스로 책임지는 것”일 수밖에 없다는 무력한 희망이 이 역설 속에서 피어난다.
숫자의 정결한 세계에서 살아가다 징집된 수학자 피에르 생느무는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노 과학자 노엘 에사이용의 집에 우연히 방문하게 된다. ‘이 일이 일어날 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노엘은 피에르를 반갑게 맞으며, ‘월간 수학’에 발표된 피에르의 논문에서 힌트를 얻어 시간여행을 가능하게 하는 물질 ‘노엘리트’를 발명했다는 ‘황당한’ 주장을 편다. 몇 차례의 실험을 통해 그의 주장이 사실임을 확인한 피에르는 서기 10만년의 미래로 떠나 인간이 세포 단위로 분절돼 각각의 기능만을 수행하는 기괴한 유토피아를 목격한다. 입으로 태어난 인간은 먹기만 하고, 근육으로 태어난 인간은 노동을 전담하며, 생식은 거대한 여성으로 형상화된 생식기에 무수한 난쟁이들이 자신의 신체를 기투하며 절멸하는 순간 이뤄진다. 전기에너지가 갑자기 사라져버린 2052년 이후 고도의 정신에너지가 전기를 대체하는 동안 인류가 진화한 새로운 방식이다.
내장도 항문도 생식기도 없는 무성체(無性體)로 진화한 신인류는 강력한 두뇌들의 정신적 에너지를 담은 일종의 축전지 브랑트뢰스트(brain-trust)의 지배를 받고, 어디에도 인격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구체적인 임무와 기능으로만 존재하는 인간은 완벽한 사회적 유기체의 일개 세포”가 되어버렸고, 고통도 회한도 욕구도 여기에는 없다. “인간의 집단의지, 즉 인류 전체의 행복을 목표로 하며 인류를 기묘한 강제적 지복을 향해 막무가내로 이끄는 집단 의지가 인류를 굴종”시켰으며, “인간은 개인으로서의 자신을 잊었다. 그에게는 감정도, 개인으로서의 사유도 없다. 오로지 인류를 위해, 인류에 의해 사는 것이다.” 그 누구도 불행하지 않은 세계, 이곳은 행복의 유토피아인가.
소설의 마지막은 노엘 박사의 딸 아네트와 사랑에 빠진 피에르가 결혼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1890년대의 파리로 금화 절도 여행을 떠났다가 황금기처럼 보였던 그 시절마저 인간은 불행의 비탄에 빠져있었음을 목격하는 것으로 반전을 이룬다. 미래여행을 통해 “한 남자나 한 여자를 구해내는 일은 가능해도 인류 전체가 필연을 향해 달려가는 일은 막을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한 피에르는 과거로 달려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를 살해하는 것만이 수많은 전쟁과 혁명, 증오와 고통에서 인류를 구해낼 수 있는 방법임을 깨닫는다.
나폴레옹을 향해 발사한 총탄은 그러나 할아버지 패러독스가 되고, 피에르는 독자들에게 존재론적 질문을 던진다. 햄릿이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To be or not to be)’를 물었다면, 피에르는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다(To be and not to be)’로 질문의 형식을 바꾼다. “우리의 작은 세계에서 현재란 과연 무엇일까? 내가 당신에게 말할 문장을 생각하는 동안 이 문장은 미래에 속해 있었소. 한데 내가 그것을 입밖에 내는 순간, 이 문장은 과거로 떨어지게 되지. 현재를 영속시키길 바라는 것, 그건 바로 무(無)를 영속시키는 거요.” 노엘 박사가 피에르와의 첫 만남에서 했던 이 말처럼, 현재는 존재하지 않으며, 과거와 미래가 있을 뿐이다.
작가는 1958년 재판본 후기에 “그렇다면 여러분은, 여러분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존재하면서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이 문제로다”라고 썼다. 사유가 번득이는 시적인 문장과 철학적인 발상이 뛰어난 소설이다.
박선영 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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