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쉽지 않을 거라 전망했지만 유승민(34ㆍ삼성생명 코치)는 해냈다. 그는 19일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발표한 선수위원 투표 결과 23명의 후보자 가운데 2위를 차지해 당선됐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만리장성의 아성을 무너뜨리고 남자 탁구 단식 우승을 차지한 지 12년 만에 나온 또 한 번의 쾌거였다. 유승민은 2008년에 당선된 태권도 금메달리스트 문대성에 이어 한국인으로는 두 번째로 8년 임기의 IOC 선수위원으로 선출됐다. 1만1,245명 선수 중 5,815명이 투표해 투표율은 46%였고 유승민은 독일의 브리타 하이데만(1,603표)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1,544표를 얻었다. 그는 곧바로 메인프레스센터에 마련된 대한체육회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앞으로 한국 스포츠 발전을 위해 헌신하겠다”며 “선수 유승민은 눈빛이 날카로운 사람이었다면, 행정가 유승민은 눈빛이 따뜻해서 모든 사람을 포용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많은 선수들의 이야기를 듣고 어려움들을 정책에 반영하겠다는 의미다. 25일 동안 오전 7시부터 오후 10시까지 하루 15시간 강행군을 이어갔던 그는 “하루가 정말 길게 느껴졌고 외로웠다”면서도 “잊을 수 없는 소중한 기억이었다”고 돌아봤다. 8년 뒤 어떤 선수위원으로 기억되고 싶냐는 질문에 유승민은 “모든 선수들이 박수칠 수 있는 위원이 되고 싶다”며 “그 때는 정식 멤버(IOC 위원)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새로운 도전의지도 드러냈다. IOC 선수위원 중 일부는 총회를 통해 IOC 위원 자격을 가질 수 있다.
다음은 유승민 위원과 일문일답
-당선 소감은.
“많이 응원하고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하다. 지난달 23일 도착해서 24일부터 열심히 했다고 자부한다. 결과장에 가지는 못했다. 너무 떨릴 것 같았다. 메시지를 전달 받고 나왔다. 기쁨도 있지만 책임감이 무겁다.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해서 대한민국 스포츠 발전에 이바지 할 수 있도록 하겠다.”
-쉽지 않다는 전망이 많았는데.
“현장에 와보니까 선수들이 선수위원 선거에 대해 잘 모르더라. 발로 뛰는게 중요할 것 같았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인사했다. 진심으로 인사했다. 내가 같은 자리에서 밝은 미소로 맞이해주니까 힘이 났다고 투표했다고 한다. 진심을 보여주니까 기대는 못 받았지만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기대를 안했기에 부담감이 없었다. 나도 한국에서 올 때부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을 많이 들었다. 그때마다 가족들, 친구들로부터 힘을 얻었다. 어찌됐건 대한민국 대표로 나왔는데 어설프게 활동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 한 달이 길게 느껴졌고 외로웠지만 끝나니까 너무 기분이 좋다.”
-뽑아준 선수들에 한마디 하면.
“나를 뽑아준 선수나 안 뽑아준 선수나 내 인사를 25일간 지겹도록 받아준 선수들에게 고맙다. 선수생활을 오래했기에 올림픽에서 얼마나 민감하고 방해받고 싶지 않은지 알기에 조심스러웠다. 사실 끝나는 날까지 왜 여기 서있는지 모르는 친구 많더라. 마지막 날 투표 해달라니까 그제야 아는 선두오 있었다. 우리 선수들도 고생했지만 굉장히 잊지 못할 기억이었다.”
-몸상태도 좋지 않았다던데.
“다행히 크게 아프지는 않았다. 사실 8월5일이 생일이었다. 아침에 벌에 쏘였다. 걱정했는데 잘 치료해주셔서 컨디션을 회복했다. 살도 빠지고. 어제 저녁에 모처럼 코리아하우스에서 맛있는 거 먹었다.”
-한국 스포츠를 위해 어떤 역할 할 것인지.
“지금 한국이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가교역할을 해야 하는 책임감을 잘 알고 있다. 행정가로서의 임무를 많이 해보지는 않았지만 최대한 임무를 익혀서 최대한 도움이 되려고 한다. 선수위원으로 당선됐는데 개인의 영광을 떠나서 어떻게 하면 선수들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1만500여 명 선수들의 고민이 있더라. 선수들도 관심 있는 분야가 다르다. 은퇴 후 고민들을 공유하고 싶다고 했을 때 반응이 좋았다. 그런 부분에서 내 역량이 있다면 도움을 주고 싶다.”
-선수들이 지적한 이슈는 무엇인가.
“선수를 만나면서 많은 질문을 받았다. 선수들의 가장 큰 이슈는 도핑같은 것이 아니었다. 과연 선수위원이 선수를 위해서 무엇을 하느냐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았다. 나도 선수위원이 아닌 후보자 신분으로 답을 할 수밖에는 없었다. 선수들과 위원의 관계를 친밀하게 할 수 있도록 역할을 하겠다. 그 다음 구체적인 이슈에 다가가겠다.”
-어떤 점을 많이 어필했나.
“은퇴해서 시간이 많다고 했다.(웃음) 너희를 많이 만날 수 있으니까 뽑아 달라고 했다.”
-다음 일정은.
“21일 오전에 총회하고 선수위원회하고 미팅하고 폐막식 참석 일정이 잡혀있다. 카드도 위원 카드로 바로 바뀌었다. 폐막식에 공식적인 카드 나온다고 하더라. 아직 정신도 없어서 공식일정 모르겠지만 체육회와 상의 뒤 일정 알려드리겠다.”
-고마운 사람들은.
“룰이 워낙 타이트하다보니 후보자들끼리도 너무 힘들다고 얘기 많이 했다. 같이 선거활동한 후보자들하고 서로 의지하면서 이야기도 많이 나눴고 정보도 공유했다. 친구들이 응원해주기 위해 14일에 들어와서 오늘 돌아갔다. 제 이름을 딴 모임 RSM에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탁구 대표팀이 어제 안타깝게 메달획득 실패했다. 아쉽더라. 영식이나 상수는 처음 나온 올림픽이었고 세혁 선배는 마지막이었다. 모든 선수들이 응원해줘서 잘 된 것 같다. 체육회 관계자, 임원들에게도 감사드리고 싶다.”
-선거운동 과정이 힘들었다고 하는데.
“누구와 할 수 없다. 누구 도움도 받을 수 없다. 선수들이 많이 돌아다니는 위치가 선수촌에서 경기장 가는 통로였는데 내가 제일 먼저 거기서 하니 다른 후보들도 모이더라. 선수들이 안다니는 시간에는 후보들끼리 모여서 고충이나 앞으로 역할 등을 상의했다. 서로가 격려해준 것 같다. 이번에 페어플레이 했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이 ‘지난 선거는 이의 제기가 많았는데 이번에는 전혀 그런 것이 없어서 좋았다’고 하더라.”
-2004년 금메달과 이번 당선을 비교하면.
“아테네올림픽 때는 팀과 함께 했다. 동료, 코치, 응원단이 든든했다. 이번에는 혼자 와서 아무도 도와줄 수 없었다. 혼자 나가고 혼자 들어오고 모든 것을 혼자 했다. 하루가 너무 길었다. 너무 힘들었다. 강문수 총감독(삼성전자 탁구단)님이 항상 하셨던 말씀이 있다. ‘원 모어’다. 남들보다 1분, 1시간, 1달 더 하면 된다고 하셨다. 숙소로 들어가거 싶다가도 선수 한명이 보이면 못 들어갔다. 이런 진심이 통한 것 같다. 이번에는 외로운 싸움에서 승리했다. 2004년에는 기뻤다면 지금은 울컥했다고 할까. 2004년 금메달이 있어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 같다. 지난 25년은 내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서 했다면 지금부터는 내 커리어를 위원회나 선수들, 대한민국 스포츠에 헌신해야 하는 포지션이 됐다. 지금부터가 더 중요하고 열심히 해야 한다.”
-처음 선수위원 도전할 때를 돌아보면.
“런던올림픽이 힘들었다. 후배들과 한 자리를 두고 경쟁해야 했다. 세 대교체 붐이 일었고 ‘유승민 안 된다’는 말도 들었다. 버틴 것은 선수위원에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2004년에 문대성 위원하고 같은 방을 썼다. 그때 보면서 꿈을 가졌다. 런던올림픽 끝나고 장미란과 진종오 선배가 나온다고 해서 자신이 없었다. 지도자를 하면서 2016년 올림픽은 보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인 중 한 분이 ‘마지막 기회인데 나가서 도전해보라’고 하셨다. 그때 재결심을 했다.”
-8년 뒤 어떤 선수위원으로 기억되고 싶나.
“8년 뒤 나는 열심히 해서 정식 멤버가 되는 꿈을 꾸고 있다. 선수위원을 하면서 명함만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업무를 잘 처리해서 인정받고 싶다. 부족한 건 많지만 열심히 위원 생활을 해서 8년 뒤 모든 선수들이 박수칠 수 있는 위원이 되겠다.”
-유세 중 특별한 기억 있나.
“인사를 하면 모른척 하는 선수가 50%, 가볍게 인사 받아주는 선수가 45%, 나머지 5%가 ‘내가 당신을 왜 뽑아야 하는지 설명해 달라’고 하더라. 그 5%의 선수들이 고마웠다. 그들에게 내 비전을 설명했다. 관심 없는 선수도 관심 갖게 하는 게 내 역할이라는 생각 들었다. 이번에 선거운동 하면서 다른 종목에서 뛰는 외국 선수와 친해졌다. 올림픽을 4번이나 나갔는데 탁구 선수 빼고는 친해질 기회가 없었다. 소중한 기회였다.”
-문대성 의원의 준비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었나.
“그때 대단하셨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태권도복 입고 낮 뜨거운 분위기를 다 이겨내고 하셨다. 그거 쉽지 않다. 이번에도 브라질 오기 전 ‘될 수 있는 한 많이 만나라’고 조언해주시더라. 그런 조언을 토대로 열심히 했다. 그때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식당 앞 도로에서 뱃지 하나 나눠줄 수 없었다. IOC에서 만든 공식 책자 하나 들고 있어야 하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선수들이 호응을 잘해줘서 감사히 생각하고 있다.”
-선수 유승민과 행정가 유승민은 어떻게 다른가.
“선수 유승민은 눈빛이 날카로운 사람이었다면, 행정가 유승민은 눈빛이 따뜻해서 모든 사람을 포용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2위는 어떤 결과인가.
“투표율이 낮을 거라는 예상 있었다. 선수들이 목에 거는 AD카드에 노란 스티커가 붙어있으면 투표를 한 사람이다. 선수들 얼굴 보고 바로 AD카드에 스티거 붙어있는 지 봤다.(얼굴) 사실 내심 자신은 있었다. 다른 후보자들도 ‘너는 충분히 받을만하다’거 해줬다.”
-이번 선거를 돌아보면.
“시합이 종료가 되면 후회가 늘 남는다. 하지만 이번에는 종료 순간 너무 기분이 좋았다. 떨어지면 억울할 것 같았는데 너무 열심히 했기에 후회는 안남을 것 같았다. 모든 것을 걸고 선수들에게 진심을 보여줬다. 선수들이 버스타고 들어올 때 졌는지 이겼는지 나는 모르는 상황이다. 인사를 건넸는데 인상을 쓰면 진 것이었다. 그게 미안했다. 나를 뽑아달라고 했지만 기분 파악도 해야 했다. 그래서 말 걸기도 미안했다. 끝나고 페이스북에 지겹도록 인사를 받아준 선수들에 고맙다고 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리우=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IOC 선수위원
선수위원은 IOC 위원과 동일한 권한을 갖는다. IOC 총회에 참석할 때에는 개최 국가로부터 전용 승용차와 안내요원이 배정될 뿐만 아니라 IOC 선수위원이 탑승하는 차량과 머무는 호텔에는 해당 선수위원 국가의 국기가 게양된다. IOC 선수위원은 운동선수가 가질 수 있는 스포츠계 최고의 명예직 ‘별중의 별’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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