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의선 철로 지하로 옮기면서
문화ㆍ녹지 어우러진 공원으로
도심 위치 ‘연트럴 파크’ 별칭
느티나무 터널ㆍ실개천ㆍ광장
구간마다 특색 있는 휴식처
도시재생 대표적 사례 꼽혀
지하철 홍대입구역 3번 출구를 나서면 길게 늘어선 은행나무길이 눈에 들어온다. 불과 도로 하나만 건너면 번잡한 홍대 거리지만 이곳은 푸른 잔디밭과 흙길, 실개천 등 여유로운 풍경이다. 공원 옆으로 늘어선 다채로운 카페와 레스토랑, 아트숍 앞에는 젊은 여성들이 줄을 섰다.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젊은이들로 북적거리는 이곳의 별칭은 미국 뉴욕의 센트럴파크와 비슷하다고 해서 붙여진 ‘연트럴파크’. 서울 도심을 관통하는 ‘경의선 숲길 공원’ 중 가장 인기 있는 연남동 구간이다.
서울과 신의주를 잇던 경의선 폐선 부지에 생긴 경의선 숲길 공원은 요즘 서울에서 뜨는 곳 중 하나다. 용산구문화센터에서 마포구 가좌역을 잇는 숲길 공원은 총 길이가 6.319㎞, 폭은 10~60m다. 전체 면적은 여의도 공원의 절반인 10만2,008㎡에 이른다. 마포구와 용산구 등 2개 구, 11개 동에 걸쳐있고 숲길 주변으로는 주택가와 상업가, 대학가가 자리잡고 있다.
버려진 철길에 불과했던 공간이 초록 공원으로 변신한 건 2005년 경의선이 지하로 들어가면서부터다. 한국철도시설공단에서 지상 부지를 무상제공하고, 서울시가 457억을 투입해 2011년 공사에 착수한지 5년 만인 지난 5월 전구간이 완성됐다.
경의선 숲길 공원의 가장 큰 매력은 산에 있는 서울의 주요 공원, 녹지와 달리 도시 중심부 평지에 자리잡아 시민들이 일상에서 자연을 누릴 수 있다는 점이다. 기다란 공원을 따라 다양한 나무가 심어져 있고 곳곳에 지하철역과 편익시설이 위치해 접근이 쉽고 편리하다. 풍성한 자연과 활기찬 도시문화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미국 뉴욕의 센트럴파크에 자주 비견되는 이유다. 지난달에는 우수한 자연 경관을 인정받아 2016년 대한민국 국토경관디자인 대전의 ‘공원ㆍ산림ㆍ하천’부분에서 국토교통부 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옛 철길을 따라 홍대ㆍ연남동 번화가부터 조선시대 창고인 만리창 등 역사의 현장을 한 길에서 만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서울시 관계자는 “선형 공원의 특성을 반영해 구간을 나눠 지역의 문화와 예술, 과거와 현재 등을 반영한 테마 숲길을 만들었다”면서 “지역주민이 활용 가능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11’자로 꾸미려던 공간을 ‘S’ 형태로 바꿔 잔디 마당과 텃밭을 확보하고, 옛 철길의 역사를 남기기 위해 일부 구간에는 경의선 레일과 침목을 그대로 보존하고 안내판을 설치했다”고 설명했다.
가장 긴 연남동 구간은 큰 소나무 숲길과 폐철길 1㎞에 걸쳐 은행나무 길이 이어져 산책을 즐기려는 가족단위 방문객에게 반응이 좋다. 공원 내에는 공항철도에서 올라오는 지하수를 활용해 지금은 사라진 세교천을 형상화한 실개천을 만들었다.
새창고개 구간은 옛 고갯길의 역사성을 강조했다. 새창고개는 17세기 후반 상업이 발달하면서 새로 설치됐던 ‘만리창’이 있던 고개에서 유래했다. 또 인왕산과 무악(서대문구 안산)에서 이어지는 산줄기 끝 용(龍)의 허리에 위치한 곳이어서 용산(龍山) 지역의 유래가 되는 고개다. 일본은 1904년 경의선 철도를 건설하면서 용산 줄기 중 ‘용의 허리’ 부근에 해당하는 새창고개를 절단했다. 시는 이 구간에 우리민족의 상징목인 대형 소나무를 심어 능선을 복원했다.
150m로 비교적 짧은 염리동 구간은 공덕역의 업무ㆍ상업지역과 대흥로 일대 주거지역을 감안해 운동시설과 테마가 있는 편의시설 광장 등을 조성했다. 메타세콰이어길과 느티나무 터널 등 빌딩 속 정원을 만들어 인근 직장인들과 지역 주민의 휴식처로 인기가 높다.
가장 최근에 완공된 창전ㆍ동교동 구간은 경의공항선 홍대입구역 ‘땡땡거리’와 와우교 일대다. 이곳은 기차가 지나가면 차단기가 내려가고 ‘땡땡’소리가 울려 땡땡거리로 불렸다. 홍대문화의 발원지로 알려져 있는 이곳에는 인대밴드 1세대가 연습하던 창고와 술잔을 기울이던 고깃집 등이 아직도 남아있다. 이 구간에는 홍대 일대의 예술ㆍ문화적 특성을 살려 공연 마당과 다목적 소광장을 조성하고,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기찻길과 역무원, 아기 업은 엄마를 형상화한 조형물을 설치했다.
신수동구간에는 서강대학교와 지역 커뮤니티가 교류할 수 있는 넓은 잔디마당과 광장을 만들어놨다. 일제강점기 마포 범람을 막기 위해 물길을 없앤 ‘선통물천’을 살리기 위해 공항철도 서강역사의 지하수를 활용해 실개천을 재현하고, 농기구와 무쇠솥을 만들던 ‘무쇠막터’ 등 마을의 옛 기억도 남겨뒀다.
최근 공원 주변으로 예술가들이 꾸민 개성 넘치는 공간과 카페, 공예품 가게 등이 자리를 잡으면서 곳곳에 새로운 랜드마크가 조성되고 있다. 대형 브랜드와 프렌차이즈 카페가 들어선 도심에서 보기 드문 풍경이다. 10년째 마포구에 살고 있는 손미진(29)씨는 “홍대 부근에 자주 가는데 공원이 조성되고 나서는 공덕역에서부터 홍대역까지 차를 타지 않고 걸어 다닌다”면서 “큰 대로변에 유명 상점들이 줄지어 있는 것과 달리 공원과 연결된 오래된 골목길에 맛집과 이색 공간들이 많아서 걸을 때마다 보물 찾기를 하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주민들 반응은 호평 일색이다. 특히 오랜 세월 철길 바로 옆에서 소음과 먼지 등 불편을 감내해야 했던 터주들의 반응이 뜨겁다. 대흥동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김순례(64)씨는 “지난 봄에 공원에 벚꽃이 펴서 봄철 내내 사람이 찾아왔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인 건 정말 오랜만”이라면서 “오래된 철길과 폐가에 가로막혀 있던 동네에 숨통이 트이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경의선 숲길 공원은 서울시 최초로 시민 주도로 운영되고 있다. 이를 위해 지난 2월 숲길의 운영ㆍ관리를 전담할 비영리단체 ‘경의선 숲길지기’가 발족됐다. 미국 뉴욕의 하이라인을 운영하는 ‘하이라인 친구들’처럼 시민주도형으로 공원을 운영하기 위한 취지다. 연남지기와 대흥염리지기, 도원지기가 연합한 조직으로, 지역 주민과 문화예술가, 상인, 전문가 40명으로 구성됐다. 공무원은 행정지원만 한다.
서울시 푸른도시국 관계자는 “방치된 자투리 공간을 지역의 문화와 예술, 과거와 현재를 한 길에서 만나는 시민공간으로 탈바꿈시킨 서울의 대표적인 도시재생 사례”라면서 “시민과 함께 완성해 가는 공원으로 조성 단계에서부터 주민의견을 최대한 반영했고 앞으로 운영 관리도 시민들이 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손효숙기자 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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