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J. 맥나미 외 │김현정 옮김│사이 펴냄
능력이 허구는 아닐 것이다. 성공 이유를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요소다. 여기에 노력이 곁들여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두 가지 개인적 요인의 결정력을 사람들은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또 그 둘이 보상의 기준이 돼야 한다고 믿는다. 능력주의(meritocracy)다.
이 원리의 핵심 기제는 교육이다. “사람들은 교육이야말로 성공의 열쇠이며 능력주의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옹호자들에겐 학력도 능력과 노력에 의해 획득되는 일종의 보상이다.
그러나 학교와 교육이 “불평등한 삶을 대물림하는 잔인한 매개체”로 전락한 지는 오래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사회학과 교수인 저자들은 학교 교육이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아니라 부(富)와 지위를 재생산하는 시스템으로 변질됐다고 지적한다. 그것은 “계층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일 뿐이라는 것이다. 갈수록 심화하는 명문학교 계층 분포 편파성을 보라.
지금껏 과소평가돼 온 것은 운(運)이다. “지금 세상은 비능력적인 요인들이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그것들은 개인의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따라잡을 수 없는 것들”이라는 게 저자들 결론이다. 그들은 부모 상속을 가장 중요한 비능력 요인으로 꼽았다.
패자(覇者)가 역사를 쓰는 것처럼 성공의 경위는 그것을 이룬 자에 의해 분식(粉飾)되게 마련이다. 능력주의 담론의 유포가 그런 류의 시도라고 저자들은 주장한다. 지배계급 편입 여부가 세습보다 능력에 의존한다는 믿음은 현상 반영이 아니라 오도된 맹신이라는 것이다.
정당성을 두른 불평등은 부당한 차별보다 더 해롭다. “비능력적 요인이 중심이 되는 사회가 갖고 있는 한 가지 장점은 사회에서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 중 적어도 일부는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한 사람들 중 적어도 일부보다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이어서 높은 곳에 위치한 사람들은 겸손한 마음을,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은 자존감을 갖게 된다.”
능력주의의 내적 한계도 환기될 필요가 있다. 윤초희 동국대 교육학과 교수는 최근 ‘교육비평’에 실은 서평에서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협소한 능력 개념에 토대하고 있는 능력주의가 학생ㆍ교사로 하여금 경제적으로 이로운 방향으로 행동토록 동기화한다”며 “언제부터인가 학교 교육도 인간 발달 대신 기업 자원 개발 관점에 동참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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