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 되면 ‘클래식 음악계의 금수저’라 해야겠다. 고조 할머니 펠라게야 사프로노바 푸셰흐니코바는 차이콥스키에게 작품을 헌정받은 피아니스트였다. 증조 할머니 베라 페도로브나 푸셰흐니코바는 라흐마니노프와 러시아 전역 투어공연을 했던 성악가였다. 아버지는 볼쇼이극장 오케스트라 피아노 수석이었다. 이런 집의 딸로 태어났으니 5살에 피아노를 배워 7살에 독주회를 가졌다. 러시아 피아니스트 올가 케른(41) 얘기다.
11살에 프라하콩쿠르 우승 이후 11개 콩쿠르를 휩쓸며 ‘앙팡 테리블’로 불렸던 그녀가 8년 만에 한국을 찾는다. 24ㆍ25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서울시립교향악단 정기연주회(엘리아후 인발 지휘)에서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을 연주한다.
올가 케른은 이메일 인터뷰에서 “증조할머니와 라흐마니노프가 함께 했던 연주회 프로그램, 할머니의 회고록, 고조할머니가 차이콥스키와 주고받았던 편지와 함께 찍은 사진을 가지고 있다”면서 “내 가족이 위대한 작곡자들과 교류했다는 사실이 저도 신기하다”고 말했다. 음악가 집안의 천재들이 그렇듯 “태어났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피아노 소리를 들”으며 자랐지만 “강요가 아니라 정말 피아노가 좋았고, 그래서 항상 피아니스트가 되길 원했다”고도 했다.
“저는 러시아에서 태어나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공부했어요. 차이콥스키나 라흐마니노프의 작품에는 러시아 자연에 대한 사랑과 갈망이 듬뿍 담겨 있어요. 끝없는 광야, 숲들, 넓고 아름다운 강과 호수들…. 그건 저에게도 좋은 영감이 되어 주었죠. 러시아 음악을 깊이 느낄 수 있는 이유죠.”
올가 케른은 라흐마니노프 곡 연주에 뛰어나다는 평을 듣는다. 1992년 라흐마니노프 콩쿠르 우승을 비롯, 2001년 젊은 연주자들의 등용문으로 일컬어지는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 때도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3번을 연주했다. 2004년 그래미상 후보작에 선정됐던 연주 앨범 역시 라흐마니노프의 코렐리 변주곡이었다. “라흐마니노프는 피아노라는 악기를 정말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곡들은 놀라우면서도 연주하기에 편안하죠. 연주자에게 최적화된 작품이에요. 멋지고 아름다운 멜로디들로 가득하고 파워풀하고 감동적이어서 대중음악과도 같죠.”
이번에 선보일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은 라흐마니노프가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해 쓴 마지막 작품. 이 작품을 “피아노 음악의 보석”이라 소개한 올가 케른은 “열정, 노력, 행복, 비애, 사랑, 슬픔 등 인간의 모든 감정을 듣고 경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관현악을 환상적으로 사용해요. 어떤 부분은 실내악처럼 가깝게 느껴지고, 어떤 부분은 거대한 관현악곡 같죠. 마지막을 향해 갈수록 철학적인 면이 깊어집니다. 죽음을 상징하는 라틴 성가 ‘진노의 날’ 선율을 도입하고, 마지막 두 마디에서 다음은 무엇인지 물으면서 마무리하죠. 듣는 이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기깁니다. 한국 관객들께 이 작품을 들려드릴 생각을 하니 정말 행복합니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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