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갈 집을 계약했다. 원래는 안채와 바깥채가 있는 한옥인데, 안채와 바깥채에 각각 하나씩 화장실을 들이고, 창고 겸 보일러실을 만드는 바람에 미음 자 형태의 집이 되었다. 오래 전부터 나는 그 집을 볼 때마다 꽤 운치 있는 집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이따금 활짝 열린 대문 안으로 들여다보이는 마당에는 하늘이 있고, 팔작지붕 아래서 세대가 다른 가족들이 둘러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대문을 사이에 둔 양쪽 방은 골목으로 들창이 나 있는데, 그곳으로 뭔가를 의논하는 가족들의 말소리가 흘러나오곤 했다. 그들이 살던 집을 실거주자가 아닌 사람이 산 뒤부터 분위기는 하루아침에 달라져 버렸다.
이사할 집을 찾는 동안 나는 밤마다 뒤척였다. 긴 긴 열대야도 한몫했다. 계약을 한 날에는 오랜만에 잠깐 낮잠을 잤는데, 제대로 자서 그런지 한결 몸이 가벼웠다. 그 기분은 딱 하루밖에 가지 않았다. 무리를 해서라도 집을 사서 생의 마지막 이사를 하려고 했던 내 앞에는 또 몇 번의 이사가 놓여 있는지 알 수 없고, 빈 집을 장악해 버린 곰팡이를 완전히 제거한 뒤 이사할 수 있을지도 걱정거리이다. 일본의 한 소설가는 잦은 이사가 창작의 원천인 양 했지만, 사람의 형편과 체질은 저마다 다르다. 나처럼 뿌리를 내려가며 에너지를 받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지금 나는 빠른 물살에 휩쓸려가는 부초처럼 뿌리가 둥둥 떠 있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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