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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난 집 딸 소희가 올림픽 금메달 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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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난 집 딸 소희가 올림픽 금메달 땄네요”

입력
2016.08.18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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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바하 카리오카 경기장 3에서 열린 리우올림픽 태권도 여자 49kg급 결승전에서 티야나 보그다노비치(세르비아)를 꺾고 금메달을 차지한 김소희가 정광채 코치의 품에 안겨 기뻐하고 있다. 리우데자네이루=연합뉴스
18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바하 카리오카 경기장 3에서 열린 리우올림픽 태권도 여자 49kg급 결승전에서 티야나 보그다노비치(세르비아)를 꺾고 금메달을 차지한 김소희가 정광채 코치의 품에 안겨 기뻐하고 있다. 리우데자네이루=연합뉴스

리우올림픽 태권도 여자 49㎏급 결승전이 열린 18일(이하 한국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파크의 카리오카 아레나3. 김소희(22ㆍ한국가스공사)가 7-6으로 앞선 상황에서 경기가 끝난 순간 티야나 보그다노비치(세르비아) 측은 종료와 동시에 몸통 공격이 성공했다며 비디오 리플레이를 요청해 잠시 긴장감이 흘렀다.

하지만 상대의 득점은 인정되지 않았고, 김소희는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려 정광채 코치와 포옹을 나눈 뒤 관중석의 누군가를 찾았다. 딸의 생애 첫 올림픽을 지켜보기 위해 한국에서 날아온 부모님이었다. 김소희에게 어머니 박현숙(51)씨와 아버지 김병호(50)씨는 각별한 존재다. 초등 1학년 때 부모님이 운영하던 식당에 큰 불이 나 가족은 빚더미에 올라 앉았다. 김소희의 어머니는 충북 제천에서 조그만 분식집을 열고 넉넉지 않은 형편에도 값비싼 보양식을 철마다 딸에게 챙겨 먹였다. 그런 어머니를 보고 김소희는 “엄마를 위해서라도 꼭 성공하겠다”고 다짐했다.

초등 3학년 때 태권도를 시작한 김소희는 고교시절 적수가 없었다. 지칠 줄 모르는 체력으로 ‘산소통’이란 별명으로 마라톤 대회에 출전해 입상하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린 건 2011년 경주에서 열린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서울체고에 재학 중이던 김소희는 여자 46㎏급에서 정상에 오르면서 이름을 알렸는데 당시 훈련 도중 오른발 엄지발가락을 다쳤고, 경기 도중 왼손 약지가 부러지는 등 만신창이가 된 상황에서도 응급처치를 하고 세계 정상에 올랐다. 이후 2013년 멕시코 푸에블라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같은 체급 2연패를 달성한 데 이어 2014 인천 아시안게임 46㎏급에서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하지만 올림픽은 세계선수권대회나 아시안게임의 절반인 남녀 4체급씩, 8체급으로 나눠 치른다. 여자는 49㎏급ㆍ57kgㆍ67kg급ㆍ67㎏초과급으로 나뉜다. 게다가 올림픽에는 특정 국가로 메달이 쏠리는 것을 막기 위해 2012년 런던 대회까지는 한 나라에서 남녀 2체급씩, 총 4체급에만 출전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는 국제대회 성적, 국내 선수층, 금메달 획득 가능성 등을 고려해 여자부에서는 2000년 시드니 대회부터 2008년 베이징 대회까지 57㎏급과 67㎏급을 선택했다. 런던 때는 67㎏급과 67㎏초과급에 선수를 내보냈다. 46㎏급이 원래 체급인 김소희로서는 올림픽 체급인 49㎏급으로 올린다 해도 기회조차 잡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번 리우 대회부터는 세계태권도연맹(WTF)이 올림픽 랭킹에서 체급별 상위 6위 안에 든 선수에게 자동출전권을 부여해 한 나라에서 체급당 한 명씩, 최대 8체급 모두에 출전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꿨다. 지난해 12월 멕시코 멕시코시티에서 열린 WTF 월드그랑프리 파이널 대회에서 김소희는 여자 49㎏급 1회전에서 세계 최강 우징위(중국)에게 0-5로 완패해 올림픽 랭킹 7위로 마감했다. 하지만 이 체급에서 6위 안에 태국 선수가 2명이 드는 바람에 김소희는 바뀐 제도의 수혜자가 되며 리우행 티켓을 극적으로 거머쥘 수 있었다.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파크 카리오카 아레나3을 찾아 딸을 응원하고 있는 김소희 어머니 박현숙(왼쪽)씨와 김병호씨의 모습. P&G 제공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파크 카리오카 아레나3을 찾아 딸을 응원하고 있는 김소희 어머니 박현숙(왼쪽)씨와 김병호씨의 모습. P&G 제공

그렇게 출전한 올림픽에서도 결승까지 매 경기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대결을 벌였다. 최대 고비였던 파니파크 옹파타나키트(태국)와 8강전에서는 2-4로 끌려가다 마지막 3라운드 종료 4초를 남겨놓고 머리 공격에 성공해 6-5로 역전승을 거뒀다. 준결승전에서는 야스미나 아지즈(프랑스)와 3라운드까지 0-0으로 승부를 가리지 못한 뒤 골든 포인트제로 치러지는 연장전에서 36초를 남겨놓고 몸통 공격에 성공해 1-0으로 이겼다. 지난해 러시아 카잔 세계선수권대회 동메달리스트 보그다노비치와 맞선 결승도 끝까지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올림픽 3연패에 도전하던 우징위가 보그다노비치에게 8강에서 패한 것도 김소희에겐 행운이었다.

한 기업의 후원으로 딸의 금메달 경기를 직접 보는 행운을 누린 어머니 박씨는 리우행 비행기에 오르기 전“소희가 고1 때 식당 벽에 ‘국가대표가 돼 부모님 해외여행을 시켜드리겠다’고 낙서를 한 적이 있다. 그런 날이 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이번 올림픽에 후원을 받아 나도 리우에 오게 됐다. 효녀 덕분에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가게 됐다”며 웃었다. 그러나 경기 도중엔 웃을 수 없었다. 어머니는 태극기에 딸의 운명이라도 달린 것처럼 두 손으로 태극기를 단단히 부여잡고 힘껏 펄럭였다. 발을 동동 구르며 떨리는 목소리로 “소희, 파이팅!”을 외치고 또 외쳤다. 가슴 졸이며 결과를 지켜보던 부모님은 금메달이 결정되고서야 참았던 눈물을 흘리며 누구를 향한 것인지 모르게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되뇌었다.

김소희는 리우에서도 대회를 앞둔 자신의 몸 상태보다 부모님의 지카바이러스 예방약은 물론 브라질 음식이 부모님 입에 맞지 않을 것을 걱정해 재료를 직접 챙겨 전달하는 효심을 보였다. 김소희는 “올림픽에 나가기까지 너무 힘들어 하늘이 무심하다 생각했는데 지금은 하늘에 감사하다”면서 “부모님께서 먼 길 오셨는데 제 경기를 보셔서 금메달을 걸어드리겠다고 약속 드렸다. 정말 기쁘다”고 말했다.

리우=윤태석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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