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아침을 열며] 누진제 폐지란 독이 든 성배

입력
2016.08.18 12:09
0 0

2013년 우리는 전주와 대구의 8월 중순까지의 평균온도가 열대지역인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태국의 방콕보다 높았다는 경악할 만한 소식을 접한 바 있다. 2014년에는 온열 질환자가 수십명이 발생했고, 2015년에는 일제강점기 이후 최고 온도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더니 올해는 아예 기상관측을 시작한 136년 동안 최고 더웠던 해라고 한다. 이쯤 되니 이상기후가 아니라 일상기후란 말이 더 어울리는 듯하다. 시민들은 고통을 호소하고 있고, 폭염 피해자도 급증하고 있다. 누진제를 없애 에어컨이라도 틀게 해달라는 목소리가 절로 나올 만하다. 정치권도 이에 조응해 연일 누진제 개편으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이대로 주택용 전기요금만 손보는 것은 오히려 늪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

누진제를 없애자고 주장하는 쪽에서는 형평성을 이유로 든다. 주택용에만 누진제도가 있어서 서민들의 주머니를 털어 기업 좋은 일만 시키고 있다는 논리다. 타당하다. 한전은 원가 회수율이 다른 종별 요금제를 통해 주택용, 일반용 전력 사용자들이 산업용 등의 사용자에게 교차보조를 해주도록 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기업들은 매년 수천억원에서 수조원까지 전기요금 혜택을 받아왔다. 기업들은 산업용 원가 회수율이 100%가 넘었다는 걸 강조하지만, 이는 극히 최근의 일이다. 그간 받아왔던 혜택이나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감안하면 비겁한 변명에 불과하다.

또 다른 이유로는 주택용 전력 사용량이 많지 않다는 걸 들고 있다. 타당하다. 2015년 현재 전력판매량은 주택용이 15%에 불과한 반면, 산업용은 56.6%에 달한다. 여름철 냉방으로 주택용 전력수요가 30% 정도 증가해도 전체 증가량은 4.5% 수준이다. 기록적인 폭염에도 불구하고 전력예비율이 10% 내외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다.

그럼에도 누진제를 폐지하면 더 이익을 보는 쪽은 부유층인 것이 사실이다. 한달에 수천만원의 전기요금을 내고 있는 삼성 이재용 부회장의 경우 누진제가 폐지되면, 4단계 요금을 적용해도 600~700만원까지 요금이 떨어진다. 2013년 당시 지식경제부가 누진제 폐지안을 들고 나왔을 때 자료를 보더라도 550kWh 정도를 쓰는 다소비 가구의 전기요금은 21만원에서 8만원까지 떨어지는 것으로 나온다. 2015년 현재 6단계 요금을 적용받는 다소비 가구 비중이 7.5%니 사실상 최상위층이 가장 큰 혜택을 보게 된다. 반면 4만원 가량의 전기요금을 내고 있는 전체의 60%는 요금이 오히려 올라간다. 누진제가 없어지더라도 연중 비싼 요금을 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가계에 역효과가 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지나치게 높은 전력소비량을 무시하기도 어렵다. 우리나라 전력소비량은 세계 10위권에 이른다. 1인당 전력소비량은 세계 평균의 3배가 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도 20% 가량 높다. 우리보다 소득이 높은 독일이나 일본, 영국 등을 넘어선 지 오래다. 2020년부터 온실가스를 의무적으로 감축해야 하는 현실을 감안할 때 전력소비가 늘어나는 건 우리 사회가 감당하기 어렵다. 정부가 온실가스 감축과 안정적인 전력공급을 이유로 핵발전소를 늘이려고 한다면 그건 사회적으로 더 큰 손해가 된다.

결론은 다시 수요관리다. 누진제는 손봐야 하지만, 그건 폐지가 아니라 개편이어야 한다. 누진단계를 축소해 서민층의 전력소비를 보장해주되, 다소비층의 요금은 환경비용을 적용해 현행을 유지하거나 오히려 강화하는 등의 수요관리책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산업용 전기요금 개편 논의가 빠지는 건 모든 것이 무의미해진다. 주택용 누진제만 손보는 건 독이 든 성배를 마시는 꼴이다. 그 경우 우리는 최고 온도 갱신 소식을 매년 접해야 할지 모른다.

이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에너지시민센터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