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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미 칼럼] 눈먼 돈, 국가 돈

입력
2016.08.18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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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대의 거부 ㄱ씨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 군부와의 인연으로 국책 사업의 독점권을 따 내 거액의 이윤을 냈다. 물론 그에게 지불된 것은 국민들의 세금이다. 그 기업을 바탕으로 여기 저기 땅을 사서 지금 그의 재산은 수조원에 이른다. 70대의 거부 ㄴ씨 역시 권력의 핵심과의 인연으로 보수 정부 시절 국책 사업을 따냈고, 지금도 그 덕에 수천억원의 재산을 지니고 산다. ㄷ씨는 핵심 권력층의 며느리로 남편과 시부모가 모두 죽고 현재는 아무 하는 일 없이 살지만, 몇 대에 걸쳐 남부럽지 않게 살고도 남을 돈을 갖고 있다. 모두 국가 덕으로 거부가 된 이들이다. 국가의 시혜는 다양하다. 국가 연구 기금도 그 중 하나다. 일단 프로젝트를 따면 가능한 많은 사람들을 끌어 들여 인건비 명목으로 거액의 예산을 따 낸다. 그런 연구에 이름이 올라가면 도움이 되니 고맙다. 연구 참여자가 많으면 대개 모여 밥이나 술을 먹고 회의 명목으로 영수증 처리를 하니, 실제 연구비에 들어가는 돈은 그만큼 깎이는 일이 비일비재다. 수년에 걸쳐 이루어지는 게 연구라, 정권이 바뀌면 어차피 유야무야 하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기에 시간만 끌다 종이쪼가리에 지나지 않은 논문을 권위 없는 학회지에 내면 그만이다. 얼마나 쉬운 장사인가. 높은 사람, 배운 사람들이 그 정도이니 어느 지역에 땅이 개발된다는 소식에 엉터리 비닐하우스를 짓고 버티는 가짜 농민들만 욕할 수도 없다. 실제로 사업하는 사람들 사이에 국가대상 사업은 노다지다. 개인들은 자신의 돈이니 하나하나 따지고 까다롭게 들지만, 국가 돈을 집행하는 공무원들은 뇌물을 받고 슬쩍 넘어 가 주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내 돈이야? 남의 돈이지. 인심이나 쓰자” 하는 식으로 대충 일을 처리하는 게 관행이었기 때문이다.

나라가 좁기 때문에 위에 열거한 부조리들을 직접 간접으로 보고 듣지 않은 이들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부자들을 부러워는 하지만 존경 하지 않는 이유고, 국가에서 돈을 푼다고 할 때 반가운 마음보다 걱정스런 마음이 드는 이유다. 모럴 해저드 어쩌고 하면서 당장 보조금을 받으면 굶어 죽을 장애인이나 극빈층 예산도 깎고, 학자금과 부모의 빚 때문에 허덕이는 젊은이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찔끔 주는 종자돈도 아까워하는 이들이, 수백억 수천억의 돈이 엉뚱한 데로 줄줄 새는 것은 상관 않는다? 수백억 재산을 가진 이가 좌판 앞 할머니의 콩나물 값 흥정하는 꼴이다. 사람의 뇌는 작은 돈의 이익과 손실은 실감을 잘 하지만, 자신이 계산할 수 없을 정도로 숫자가 커지면 그 변화에 무심해진다. 근대 이후 수학적 사고방식이 빨리 대중화된 백인들이 말도 안 되는 거래로 식민지 땅을 갈취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다. 현대인들도 0이 십여개 이상 달리면, 과연 그 숫자가 무슨 뜻인지 얼른 머리에 들어오지 않아 잘 따지지 않게 된다. 특히 수학 포기자가 많아서 그런지, 꼼꼼하게 나라 살림을 따지는 이들도 거의 없다. 과학적 사고와는 거리가 먼 대부분의 정치인들이나 행정관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런 형편이니, 어차피 무슨 별관 회의니, 어디 벙커 비상 회의니, 하는 식으로 소수에 의해 나라 살림이 좌지우지 되어도, 대중들은 나라 살림에 무관심해지고, 무기력감에 쉽게 빠지게 된다.

2차 세계대전 직전, 이런 식의 무관심한 대중들을 탁월하게 조종하고 이용했던 이가 히틀러다. 엄청난 인플레이션에 시달렸던 독일 경제의 지표 등을 조작해 마치 나치 정권이 독일을 부흥시키는 것처럼 착시현상을 일으키게 했다. 이런 사기는 오래 가지 않아 들통 나게 되어 있으니, 결국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독재자가 전쟁광이 되는 이유다. 독재자들은 대중의 숫자와 관련된 자포자기와 무능감을 교활하게 간파해서, 철저하게 나라살림을 개인의 치부에 이용한다. 오랫동안 독재에 길들여져 있던 우리나라도 이런 현상에서 자유롭지 못해 보인다. 민중과는 유리된 채, 도덕적 자기 검열조차 포기했던 19세기 조선왕조의 타락, 나라를 통째로 강도질 해 간 일본정권의 만행, 민주주의로 가는 길에 난데없이 정권을 갈취했던 군부정권들의 비도덕적 경제운용의 전통이 합쳐진 결과다. 이제 국민이 주인인 세상이라 하면서도 여전히 나라 살림을 이런 저런 이들이 들러붙어 빼간다면, 결국 그 병증 때문에 고생하는 이들은 세금을 성실하게 내는 국민이다. 김영란법 시행을 앞두고 몇 만원까지 선물이냐 아니냐, 하는 논쟁으로 시간을 보내는 사이, 정작 큰 도둑들이 나라 살림을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거덜 내고 있는 건 아닐까. 특히 내년에는 나라에 거대한 빚을 남기는 것을 감수하고 돈을 푼다고 한다. 만에 하나라도 대선을 앞두고, 국민이야 빚더미에 오르건 말건, 세금이야 엉뚱한 곳으로 가건 말건, 일단 정권만 잡으면 되겠다는 생각으로 그러고 있다면 정말 국가와 역사 앞에 큰 죄인이 아닐 수 없다. 도덕적 해이는 한달에 수만원도 아쉬운 흙수저 청년들이나 갈데 없는 빈곤 노인들이 아니라 수조, 수십조의 돈을 감독받지 않고 주무르고 있는 권력층이 고민할 문제다.

이나미 이나미심리분석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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