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민주 곳곳에 ‘어록 플래카드’
국민의당도 어제 종일 행사
생가엔 정치인 발길 잇달아
“필요에 따라 이용하나” 우려
김대중(DJ) 전 대통령 서거 7주기(18일)를 맞아 정치권의 ‘DJ 뜻 잇기’ 경쟁이 뜨겁다. 국민의당은 17일 세미나(오전), 강연회(오후), 토크쇼(저녁)까지 하루 종일 DJ 관련 행사를 가졌다. 더불어민주당은 DJ 어록에서 발췌한 글귀로 제작한 플래카드를 전국 곳곳에 내걸었고, 민주평화국민연대 소속 의원들은 16일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을 초청해 특강을 들었다. 18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리는 추도식에도 문재인 전 더민주 대표,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등 정치권 인사들이 대거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7주기를 앞두고 전남 신안 하의도의 DJ 생가를 찾는 정치인의 발길도 늘었다. 지난주만 해도 손학규 더민주 상임고문(7일)과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10일)가 하의도를 갔다. 앞서 문재인 전 대표도 4ㆍ13 총선 직후 DJ의 3남 김홍걸 더민주 국민통합위원장과 함께 방문했다. 김대중도서관 관계자는 “다른 해보다 행사 수도 늘고 추모 열기가 뜨거워 졌다”고 말했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은 정치권의 DJ 뜻 잇기 경쟁의 배경을 “호남 민심의 유동성이 커진 때문”이라고 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DJ의 뜻= 호남 민심’이라는 등식이 만들어지면서 정치권의 DJ 마케팅이 치열해졌다는 얘기다.
1년 전인 6주기 때와 비교하면, 호남을 뿌리로 하던 새정치민주연합이 더민주와 국민의당 둘로 나뉘어 각자 살림을 차린 채 호남 민심을 얻기 위해 경쟁 중이다. 김홍걸 위원장과 DJ의 측근 그룹인 동교동계 인사 상당수도 갈라져 있다. 게다가 전남 순천이 지역구인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도 “내년 대선에서 호남에서 20% 득표율을 올리겠다”고 선언하고 두 야당에 도전장을 던졌다.
정치권의 DJ 마케팅에 대한 과열 우려도 많다. 일부에선 사드 배치에 찬성하면 DJ의 햇볕정책을 거스르는 것이라거나, 정작 자신은 계파 갈등을 부추기면서 야권 통합을 원했던 DJ의 뜻을 어겼다는 식으로 상대를 공격하는 데 DJ를 앞세운다. 당장 더민주 당 대표 경선에 출마한 후보들은 호남 유세에서 각각 “서울대 학생회장 시절 김대중 대통령 후보를 지켰다”(김상곤), “DJ의 부름을 받아 정치를 시작했다”(이종걸), “DJ 앞에서 입당 원서를 쓰고 정계에 발을 내디뎠다”(추미애)며 DJ와의 남다른 인연을 자랑했다.
박구용 전남대 교수는 이를 ‘승자의 역사학’이라고 지칭하며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 관계나 필요에 따라 역사적 인물을 불러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말로는 DJ의 뜻을 잇겠다지만 복지(4대 보험), 통일(햇볕 정책) 등 그의 정치ㆍ사회적 유산을 현재와 미래에 어떻게 적용시킬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별로 없다”며 “DJ의 정신은 없고 DJ이름만 남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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