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에 직장이 있는 곽모(29)씨는 지하철 강남역 11번 출구 근처를 지날 때마다 역 앞에 수북이 버려져 있는 일회용 커피잔을 보고 눈살을 찌푸린다. 부끄러운 시민의식도 문제지만, 무덤처럼 쌓여있는 플라스틱, 종이컵이 자원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 곽씨는 “차가운 커피나 차를 담은 플라스틱 컵은 물로 헹구기만 해도 새 것처럼 깨끗한데 그냥 버리는 건 아깝다”고 말했다.
실제 카페에서 무심코 들고 나오는 일회용(테이크아웃) 커피잔은 길거리 쓰레기의 주범으로 꼽힌다. 서울 서초구가 올해 6월 10일부터 40일간 강남대로에 쓰레기통 10대를 설치하고 운영했더니, 전체 쓰레기(하루 평균 625.14ℓ)의 93%가 캔, 병, 플라스틱 컵 등 재활용 가능한 품목으로 집계됐다고 17일 밝혔다. 특히 이들 가운데 97%는 카페에서 나온 일회용 커피잔으로 파악됐다. 서초구 관계자는 “마시고 남은 음료를 커피잔과 함께 버리는 경우가 많아 음료가 넘치면서 악취가 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회용 컵에 보증금을 부과하는 방안이 자율적으로 일찍 시행됐지만 현재는 흐지부지된 상태다. 2002년 환경부는 대형 카페 13곳, 패스트푸드점 5곳과 자율 협약을 맺고, 일회용 컵에 50~100원의 보증금을 매기는 사업을 시행했다. 소비자가 판매처에 반납하면 해당 금액만큼 환불을 받는 구조였다. 그러나 법적 근거 없이 소비자에게 비용을 부담하게 하는 일이 부당하다는 지적이 제기됐고, 일부 업체가 보증금을 수익으로 처리하는 등 문제가 불거져 2008년 중단됐다. 길거리 쓰레기통은 물론이고 화단 위, 빌딩 울타리 위 등 평평한 곳이면 어디든 마시다 버려진 일회용 컵을 흉물처럼 목격할 수 있는 게 요즘 도심 풍경이다.
다행히 일회용 커피잔을 재활용하기 위해 빈 병처럼 보증금을 부과하고, 회수율을 높이자는 논의가 다시 시작되고 있다. 이달 12일 국회에서 자원의절약과재활용촉진에관한 법률의 일부 개정안이 발의되면서 일회용 컵 보증금은 예전의 자율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법적 근거를 갖출 가능성이 높아졌다. 문진국 새누리당 의원 등이 발의한 개정안은 현행법에 일회용 컵, 용기에 보증금을 매기고, 소비자가 판매처에 반납하면 환불 받게 하는 내용을 담았다. 일회용 컵 겉면에는 환불 문구를 의무적으로 표시하도록 했다. 만약 일회용품 제조사가 문구를 기재하지 않거나, 카페 등 음식점이 환불을 거부하면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일회용 컵에도 빈 병처럼 보증금이 부과되면 회수율은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과거 일회용 컵 보증금이 시행됐을 당시 종이컵을 반납하는 사람들 비율(회수율)은 2003년 23.8%에서 3년 뒤 38.9%까지 증가했다. 다만 커피값 인상 논란이 예상된다. 예컨대 내년 1월 빈 병 보증금 인상을 앞두고 있는 주류협회는 “주류가격이 10% 이상 오르게 된다”는 논리로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카페와 패스트푸드점이 급속도로 증가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개정안을) 반대할 이유는 없다”며 “소비자 부담이나 부작용 등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문진국 의원은 “소비자 부담을 줄이기 위해 보증금 액수는 50원 안팎에서 결정될 것”이라며 “유통업계와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해 현실적인 시행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장재진 기자 blan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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