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영호 공사는 영국 교외 생활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말쑥한(dapper) 영국 중산층 같았다.” 가족과 함께 한국에 입국한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 태영호 공사와 친분이 있는 BBC방송의 서울ㆍ평양 스티브 에반스 특파원이 전한 태 공사의 모습이다. 에반스 특파원의 설명처럼 태 공사는 실제 북한 상류층 사회에서 자란 이른바 ‘북한 금수저’로 확인되고 있다.
태 공사는 2001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북한과 유럽연합(EU)의 인권대화에서 북한 대표단 단장으로 외교무대에서 주목을 받은 적이 있다. 당시 외무성 구주국장 대리이던 그는 북한 외무성 내에서 손꼽히는 서유럽 전문가로 알려졌다. 탈북 외교관들에 따르면 그는 고등중학교 재학 중 고위 간부 자녀들과 함께 중국에서 유학하며 영어와 중국어를 배웠으며, 귀국해 평양국제관계대학을 졸업하고 외무성 8국에 배치됐다. 그는 이어 덴마크어 1호양성통역(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 전담통역 후보)으로 뽑혀 덴마크에서 유학했으며 1993년부터 덴마크 대사관 서기관으로 일했다. 1990년대 말 덴마크 주재 대사관이 철수하면서 스웨덴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바로 귀국해 EU 담당 과장으로 승진했다.
에반스 특파원을 비롯한 주변 인사들에 따르면 태 공사는 올 여름 임기를 마치고 평양으로 복귀할 예정이었다. 에반스는 BBC에 게재한 글에서 “마지막으로 태영호를 만났을 때 그가 가장 좋아했던 런던 서부 인도식당에서 함께 커리를 먹었다”며 “북한으로 돌아가지 않으리라는 기미는 조금도 내비치지 않았는데 아마도 북한 외교관으로서 넘지 못한 선이었을 것”이라고 기억했다. 에반스에 따르면 태 공사는 업무에 특별히 적극적이었다. 김정은의 독특한 헤어스타일이 국제적으로 화제가 된 2014년 런던 서부 사우스일링의 한 미용실에서 김 위원장의 사진에 '불쾌한 날엔'(BAD HAIR DAY)라는 문구를 달아 할인 행사 포스터를 만들자 그가 직접 찾아가 항의했다는 것이다.
에반스 특파원은 또 태 공사를 보수적이고 말쑥한 전형적인 영국 중산층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에반스는 “한때 골프에 열광하다 ‘골프채를 놓지 않으면 평양으로 돌아가겠다’는 부인의 불평에 골프 대신 테니스를 선택했다”고도 전했다. 태 공사의 큰 아들은 영국의 한 대학에서 공중보건경제학 학위를 받았고, 덴마크에서 태어난 작은 아들은 막 고교를 졸업하고 임페리얼 칼리지 진학을 앞둔 것으로 전해졌다.
정지용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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