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안이 우리의 영혼과 운명을 갉아먹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사회개혁 및 평화운동에 평생 매진한 고(故) 강원용(1917~2006) 목사의 10주기(17일)를 맞아 설교선집 ‘돌들이 소리리라’(대한기독교서회)가 출간됐다. 해방 직후부터 서울 중구 장충동 경동교회를 이끈 시기를 거쳐 은퇴한 후의 설교 중 48편을 박근원 한신대 명예교수 등이 추려 담았다.
고인은 억압과 소외, 분열과 다툼이 횡행한 격동의 현대사에서 “기독교의 사명은 기독교화가 아니라 인간화”라며 인간회복을 갈구한 목회자다. 1917년 함경도에서 화전민의 아들로 태어나, 15세에 신앙을 가졌다. 농사를 짓다 1935년 북간도 용정으로 가 은진중학교에서 평생의 스승인 김재준 목사를 만났다. 함께 공부한 이들이 윤동주, 문익환 등이었다. 졸업 후 일본으로 건너갔을 때 태평양전쟁이 일어나는 바람에 만주에서 농촌선교운동을 벌였고, 해방 직후 서울에서 경동교회를 세웠다. 강 목사는 1958년부터 1986년까지 30년 가까이 경동교회 담임목사를 지내며 민주화와 양극화 해소를 위한 활동을 폈다. 1963년 세운 사회운동단체 크리스찬아카데미(현 대화문화아카데미)는 노동, 인권, 교육 분야의 주요 담론을 이끌었다.
탁월한 연설가로 기억되는 고인은 자신을 “빈들(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로 묘사하곤 했고 그의 진심 어린 설교는 청중을 사로잡았다. 줄곧 교회갱신이 사회개혁의 신앙적 밑거름이 돼야 한다고 믿어 “교회는 영토를 확장시키거나 담을 쌓을 것이 아니라 세상 속으로 들어가 스스로를 희생해야 한다”(1958년 설교 ‘전진하는 교회’ 중)고 역설했다. 또 “안일한 신앙주의를 청산하고 무너져가는 중산계급 울타리를 벗어나 학생, 청년, 지식층, 노동자, 농민들을 생각하자”(‘시대의 표적’ 중)고 호소했다.
전태일 열사의 분신 뒤에는 “자살은 죄”를 언급하는 교회와 이 죽음을 막지 못한 정부, 노동계를 규탄하며 “우리는 돌멩이가 아닌 밀알이 되어 인간이 정당한 대접을 받는 사회를 건설하는데 힘을 합쳐야 한다”고 했다가 중앙정보부에 불려가기도 했다.
그리스도인들이 당면한 양극화, 비인간화의 문제를 직시하고 이 광야에서 결코 무력해지지 말아야 한다는 그의 호소는 2016년 한국 사회와 교회의 현실에도 유효하게 들린다. “양심의 소리는 때로 모든 것을 이분법적으로 보는 풍조 속에서, 이 만연된 흑백논리 속에서 양편의 반발과 비난을 당하게 된다. 진실한 부르짖음은 고립되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 상처를 부둥켜 안고 역사 속을 뚫고 나가는 길만이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길이다. (…) 진실의 소리가 잠잠하게 되면 돌들이 소리를 지르리라.” (1972년 설교 ‘돌들이 소리지르리라’ 중)
채수일 경동교회 담임목사는 추천사에서 “설교의 빈곤이 교회 위기의 근본인 우리 시대에, 강 목사님의 설교가 한국교회 강단을 새롭게 하길 기대한다”고 했다. 고인을 기려온 재단법인 ‘여해와함께’는 이날 경기 여주시 남한강공원묘원에서 묘소를 참배하고 경동교회 본당에서 음악회 등 추모의 밤 행사를 열었다.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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