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400만 고지에 올라선 ‘덕혜옹주’의 흥행에 안도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10억원을 투자하며 영화 제작에 힘을 보탰던 주연배우 손예진은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게 됐다. 허진호 감독은 대형 흥행작을 자신의 필모그래피에 새기게 됐다.
‘덕혜옹주’ 흥행의 최고 수혜자는 투자배급사 롯데엔터테인먼트다. 롯데엔터테인먼트는 2014년 11월 개봉한 ‘기술자들’ 이후 2년 가까이만에 흑자 영화를 배출하게 됐다. 롯데는 ‘간신’과 ‘협녀, 칼의 기억’ ‘서부전선’ ‘해어화’ 등 여러 화제작들을 투자배급했으나 잇달아 적자의 쓴 맛을 봐야 했다. “롯데가 투자하면 다 망한다는 속설이 생기면 어쩌냐”며 영화 관계자들이 우려할 만큼 흥행전선에서 패퇴했다. 영화사들이 롯데 투자를 기피하는, 해괴망측한 상황이 발생할지 모른다는 풍설도 떠돌았다. 롯데엔터테인먼트는 충무로 빅4 투자배급사이자 대기업 계열사로서의 자존심이 많이 구겨졌는데 ‘덕혜옹주’로 체면을 어느 정도 세웠다.
‘부산행’이 1,000만 관객을 넘어서며 투자배급사 NEW(뉴)도 한숨을 돌리게 됐다. 뉴는 올 상반기 TV드라마 ‘태양의 후예’가 큰 인기를 끌며 주목 받았으나 영화에선 부진의 연속이었다. 지난해 ‘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있네’를 비롯해 ‘대호’ ‘오빠생각’ 등이 흥행 성과를 내지 못했다. “예전의 뉴가 아니다”는 말이 나올 때쯤에 ‘부산행’이 1,000만 클럽에 가입하면서 건재를 과시하게 됐다.
CJ엔테테인먼트는 ‘인천상륙작전’이 650만 관객을 모았으나 함박웃음을 터트리지 못할 처지다. 2013년 ‘설국열차’와 2014년 ‘명량’ 2015년 ‘베테랑’이 바통을 주고 받으며 3년 연속 여름 흥행대전 1위를 차지했으나 올해는 2위나 3위에 만족해야 할 듯하다. 업계 최강자로서는 좀 쑥스러운 성적표다. ‘인천상륙작전’의 완성도를 두고 오가는 말들이 많은 점도 신경에 거슬릴 듯하다.
올해 여름시장의 숨은 승자는 쇼박스 아닐까. ‘터널’로 16일까지 353만3,443명을 모으며 선전하고 있다. 1주일 먼저 개봉한 ‘덕혜옹주’(410만5,743명)를 제치고 여름 흥행대전에서 적어도 3위는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암살’로 1,200만 관객을 만난 쇼박스는 ‘사도’와 ‘내부자들’ ‘검사외전’ ‘굿바이 싱글’로 이어지는 흥행 릴레이를 만끽하고 있다. ‘남과 여’와 ‘그날의 분위기’ 등이 관객들의 외면을 받았다고 하나 충무로 빅4 중 유일하게 행복한 나날을 이어가고 있다.
‘국가대표2’를 제외하면 한국영화들이 다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보기 드문 성과를 낸 올 여름은 다음 계절에 이어질 더 치열한 경쟁을 예고하고 있다. 자신감을 되찾은 롯데엔터테인먼트, 원기를 회복한 뉴, 여전히 만만치 않은 CJ엔터테인먼트, 흥행 호조를 이어가고 있는 쇼박스의 경쟁이 충무로 지형도를 또 어떻게 바꿔 놓을까. 언제나 그렇듯 관계자는 피가 마르지만 구경꾼은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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