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끄는 올림픽 투잡족
남자 800m 클레이튼 머피
고교 땐 입상 한 번 못했지만
부모님 돼지 농장 도우며
최근 3년 새 기록 급상승 출전
16일(한국시간) 리우데자네이루 마라카낭 올림픽 주경기장에 독특한 이력의 메달리스트가 등장했다. 주인공은 바로 ‘돼지농장 일꾼’이 본업인 미국 육상선수 클레이튼 머피(21)다.
머피는 이날 열린 리우 올림픽 육상 남자 800m 결선에서 ‘케냐 레전드’ 데이비드 레쿠타 루디샤(28ㆍ1분42초15), 타우픽 마클루피(28ㆍ알제리·1분42초61)에 이어 1분42초93의 기록으로 3위를 차지했다. 머피가 따낸 동메달은 미국 육상 남자 800m에서 24년 만에 나온 귀한 메달이라 의미가 있었지만, 그가 살고 있는 미국 오하이오주의 작은 마을 뉴파리에선 1817년 마을이 생긴지 약 200년 만에 처음 나온 올림픽 메달이기도 했다.
미국 야후 스포츠에 따르면 머피는 고교 시절 그리 뛰어난 육상 선수는 아니었다. 오하이오주 내 고등부 대회 800m에서도 입상하지 못했던 그는 2012년 런던올림픽 때 자신의 종목인 800m 경기조차 보지 않았을 정도로 올림픽에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머피는 육상을 취미로 하면서 부모가 운영하는 돼지 농장 일을 도왔지만, 최근 3년 사이 기록이 크게 좋아지면서 올림픽에 출전했고 결국 ‘대형 사고’를 친 것이다.
이처럼 올림픽 무대에는 ‘육상 스타’ 우사인 볼트(30ㆍ자메이카)나 ‘수영 황제’ 마이클 펠프스(21ㆍ미국)처럼 스포츠로 부와 명예를 함께 누리는 스타들 외에 평범한 삶을 살면서 열정을 불태우는 이들이 적지 않다.
영국 BBC에 따르면 근대5종 여자부 경기에 출전하는 도나 바칼리스(36ㆍ캐나다)는 선수 생활을 이어가기 위해 다양한 부업을 해왔다. 근대5종 선수들에 대한 캐나다 정부의 지원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근대5종에 포함되는 펜싱과 사격, 수영, 승마, 크로스컨트리의 경기력 향상을 위해선 각 종목별 코치와 연습장 등을 구해 주당 약 30시간의 훈련을 해야 하는데 정부 보조금은 필요한 비용의 10%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바칼리스는 이 비용들을 마련하기 위해 보조강사와 조사원, 강연자, 영상 제작자로 일했고, 모금 활동까지 벌였다. 그는 현역 은퇴 후의 삶을 위해 토론토 대학에서 토목 공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투잡족’ 올림픽 대표들은 더욱 많다. 콜롬비아 럭비 대표팀 나탈리에 마르치노(35)는 세계적인 정보통신기술(IT) 업체인 ‘트위터’의 영업직 사원으로 일한다. 마르치노는 “일과 럭비를 동시에 하는 것은 오랜 기간 내 현실의 일부였다”고 말했다. 우체부로 일하는 벨기에 태권도 대표 라헬레 아세마니(27), 전자기기 제조업체의 엔지니어인 나이지리아의 투포환 대표 스티븐 모지아(22)도 대표적인 ‘투잡족’이다.
스포츠 역사가인 마크 다이레슨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교수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1980년대까지는 기업의 후원을 받지 않는 아마추어 선수들이 올림픽의 표준이었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며 올림픽 무대에 선 선수들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지적했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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