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 6개월 된 전관 변호사
연수원 동기가 재판장인 사건
결심공판 직전 부적절한 수임
‘심리가 상당 정도 진행된 경우’
재판부 교체 예외 규정 노린 듯
올해 2월 부장판사에서 퇴임한 변호사가 사법연수원 동기이자 과거 네 차례나 같은 법원에서 근무했던 재판장의 형사사건을 맡아 논란이 일고 있다. 연고로 엮인 재판이 그 자체로 공정성 시비를 낳아 사법불신을 야기한다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부장판사가 법복을 벗은 지 6개월 만에 의심받을 만한 사건 수임을 한 것이어서 부적절한 처신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부장판사 출신인 안모(47ㆍ사법연수원 25기) S법무법인 대표변호사는 이달 8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사기) 혐의로 지난 3월 기소된 김모(42ㆍ수감 중)씨의 형사사건에 변호인으로 자신의 이름을 추가했다. 검찰이 총 37억원대의 투자 사기를 친 혐의로 김씨에 대해 징역 5년을 구형하고, 변호인의 변론을 마무리하는 결심공판을 불과 이틀 앞두고 뒤늦게 사건을 맡은 것이다.
피고인 김씨는 매우 복잡한 변호인 선임 과정을 거쳤다. 검찰 수사 단계에서 검사 출신 전관 변호사를 고용했다가 기소되자 빠지게 했다. 김씨의 사건이 앞서 재판에 넘겨진 동종의 사기 사건과 함께 올해 4월 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6부(부장 이재석)로 재배당되자 김씨는 안 변호사가 있는 S로펌에 변호를 의뢰했다. S로펌을 선임하기 전에 잠시 사건을 맡았던 국선 변호사는 사임시켰다. S로펌은 처음에는 말단급인 K(30ㆍ연수원 45기) 변호사에게 김씨 사건을 맡겼다가 선고를 앞둔 ‘끝물’에 구원투수 격으로 안 변호사를 투입했다.
안 변호사의 막판 재판 참여는 법원의 연고관계 사건 회피제도의 빈틈을 이용한 것으로 의심된다. 안 변호사는 김씨 사건의 재판장을 맡은 이 부장판사와 사법연수원 동기이자 대학 선후배 사이다. 두 사람은 2001년 서울지법, 2007년 서울고법, 2011년 광주지법, 2012년 의정부지법 등 네 곳에서 함께 근무했다. 이처럼 연고가 깊은 전관 변호사가 재판 초기부터 사건을 맡을 경우 이 재판장은 회피신청을 해야 한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부는 지난해 8월부터 판사와 ‘고교, 연수원 동기, 같은 재판부 근무 이력’ 등 일정한 연고관계가 있는 변호사가 사건을 맡은 경우 재판부를 재배당하는 지침을 운영 중이다. 하지만 법원은 ‘이미 심리가 상당 정도 진행된 경우’ 등에는 재판부를 바꾸지 않을 수 있다는 예외 규정을 두고 있어 안 변호사가 이를 노리고 일부러 뒤늦게 변호사 추가 지정 서류를 낸 게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로 재판부 재배당은 이뤄지지 않았는데 “해당 변호사가 늦게 들어와서 재판부를 재배당하지 않기로 정했다”고 법원 관계자는 밝혔다.
안 변호사는 재판장과 연고가 있는 재판 참여에 대해 “의뢰인이 요청해서 그렇게 됐다”고만 해명했다.
김씨 사건은 9월 2일 선고를 앞두고 있어 판결에 관심이 쏠리게 됐다. 대한변호사협회 관계자는 “법원은 재판의 공정성에 한 점 의문이 가지 않는 판결을 내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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