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 사태’ 딛고 상생 하모니
올 상반기 9년 만에 흑자 전환
7년 연속 무분규 임금 협상 타결
해고자 복직ㆍ유가족들 지원 합의
국내외 시장 겨냥 새 프로젝트
3년후 年20만대 생산 부푼 꿈
지난 11일 오후 2시 경기 평택시 칠괴동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조립1라인. 공장 바깥은 폭염으로 기온이 섭씨 35도까지 치솟았지만 에어컨이 가동되는 공장 안은 주력 차종 ‘티볼리’와 적재 용량을 늘린 ‘티볼리 에어’ 조립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한때 생산 물량이 없어 한기마저 감돌던 이 곳은 최근 티볼리 생산량을 맞추기 위해 공휴일과 주말에도 특근 강행군이 이어지고 있다. 선배들 사이에서 동분서주하던 신입사원 한현석(26)씨는 “일이 많아도 다들 힘든 줄 모른다”며 “회사를 살리기 위해 한 마음으로 뭉칠 수 있어 기쁠 뿐”이라고 말했다.
구조조정에 반발한 노조가 2009년 5월말부터 8월초까지 77일간 공장을 점거한 ‘쌍용차 사태’는 국내 노동사에서 가장 격렬한 농성이었다. 대주주 상하이자동차의 소위 ‘먹튀 논란’에 해직 노동자들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비극까지 이어지며 쌍용차 사태는 일개 기업의 범주를 넘어 사회 문제로 비화했다.
그러나 벼랑 끝까지 몰렸던 쌍용차는 6년이 흐른 지금 다시 미래를 꿈꾸는 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다. 아직 완전한 정상화라고 하긴 이르지만 탄탄한 노사 공감대를 바탕으로 자력 부활의 기반을 하나씩 갖춰가고 있다. 티볼리의 인기 덕에 상반기 실적은 이미 영업이익 274억원, 당기 순이익 204억원의 흑자로 돌아섰다. 상반기만 따지면 무려 9년 만의 흑자 전환이다. 이런 기조라면 2008년부터 이어진 연간 적자의 수렁에서도 탈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쌍용차가 이처럼 재도약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상생ㆍ협력ㆍ안정을 공동 기치로 내건 노사 협력이었다는 게 회사측의 설명이다. 2010년부터 올해까지 7년 연속 무분규 임금협상 타결에도 과거 사태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노사의 의지가 배어있다. 실제로 지난했던 이전 노조원들과의 갈등도 지난해 12월 말 노ㆍ노ㆍ사 3자가 해고자 복직과 유가족 지원 등의 의제에 전격 합의하며 6년 만에 종지부를 찍었다. 양측은 파업에 따른 손해배상 소송과 가압류 등 법적 조치도 모두 취하하며 회생의 발판을 만들었다.
2010년 평택공장에서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까지 ‘쌍용차 회생을 위한 노사 공동 도보 릴레이 대장정’에 앞장섰던 생산본부장 송승기(54) 상무는 쌍용차가 자력으로 일어섰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회생에 1,000억원이 필요했지만 누구도 도와주지 않았다”며 “스스로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고 회상했다.
쌍용차의 아픈 경험은 ‘가격 대비 성능’이 뛰어난 티볼리 탄생의 밑거름이 됐다. 2000년대 잇따라 출시한 신차 ‘로디우스’ ‘카이런’ ‘액티언’ 삼총사의 참담한 실패는 구조조정을 촉발한 원인이었기 때문이다. 송 상무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은 최고라는 자만감에 소비자가 아닌 기술자가 원하는 차를 만들었던 셈”이라며 “이후 아픔을 겪은 우리는 달라졌고, 티볼리를 통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회복했다”고 말했다.
쌍용차는 내년 초 ‘렉스턴’ 후속 SUV ‘Y-400’(프로젝트명), 2018년 픽업트럭 ‘Q200’, 2019년 북미 시장을 겨냥한 코란도C 후속 ‘C300’ 출시에 전 역량을 쏟고 있다.
신차들이 진용을 갖추는 2019년이면 쌍용차 생산량은 연 20만대를 넘어서게 된다. 전체 공장 가동률도 현재 63%에서 80% 이상으로 올라가 비로소 안정적인 궤도에 진입한다. 21년간 조립라인에서 근무한 문성열(47)씨는 “청춘을 바친 회사지만 한번도 고용 불안에 시달리지 않은 적이 없었고, 아직도 일말의 불안감이 남아 있다”며 “이런 걱정 없이 일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기 위해 직원 모두 뜨거운 땀방울을 흘리는 중”이라고 말했다.
평택=김창훈 기자 ch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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