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인도, 다시 득세하는 힌두 물결… 간디ㆍ네루 종교 화합 정신 잊었나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인도, 다시 득세하는 힌두 물결… 간디ㆍ네루 종교 화합 정신 잊었나

입력
2016.08.17 02:51
0 0

■혼란에 빠진 인도 정치ㆍ사회

“이슬람 적대시하는 목표 같다”

트럼프 당선 기원 전통 의식도

2000년대 초 종교폭력 재연 우려

■극우파 손 잡고 급성장한 BJP

1984년 2석 불과… 1998년 집권

무슬림과 대립 구도 만들어 내고

州정부에선 근본주의 정책 구체화

■모디 파워… BJP ‘화려한 부활’

강성 힌두… ‘암소 벨트’ 압승

구자라트 경제 부흥 경험 더해

前 총선보다 의석 수 166석 늘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15일(현지시간) 인도 뉴델리 레드 포트의 성루에서 독립기념일 70주년을 맞아 연설한 후 군중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뉴델리=AP 연합뉴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15일(현지시간) 인도 뉴델리 레드 포트의 성루에서 독립기념일 70주년을 맞아 연설한 후 군중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뉴델리=AP 연합뉴스

인도의 독립 기념일도 한국의 광복절과 같은 8월 15일이다. 인도 반도는 1947년 8월 15일 힌두교 다수 지역인 인도와 무슬림 다수 지역인 파키스탄으로 나뉘어 영국으로부터 분리 독립됐다. 종교를 기반으로 분리된 뼈아픈 역사 때문에 마하트마 간디와 초대 총리 자와할랄 네루 등 주요 지도자들은 ‘국가통합’을 위한 세속주의와 범민족주의를 핵심 국가 이념으로 삼았다. 하지만 독립 70주년을 맞은 현재 인도에서 선조들이 그토록 열망했던 종교 간 화합은 갈수록 요원해지고 있다.

힌두 근본주의 확대와 정치사회 갈등 고조

특히 나렌드라 모디 현 총리가 이끄는 힌두근본주의 성향 인도국민당(BJP)이 집권한 후 ‘힌두의 인도’를 건설하려는 힌두 근본주의자의 활동이 활발해지며 무슬림에 대한 적대가 격렬해지고 있다. 지난 5월에는 힌두근본주의 단체인 ‘힌두 세나’(Hindu Sena) 회원이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을 기원하는 힌두 전통 의식을 가졌다. 6월에는 4단으로 된 커다란 케이크를 앞에 두고 트럼프의 생일을 축하하기도 했다. 이들이 트럼프를 지지한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이슬람을 적대시 하고 있기 때문이다.

힌두근본주의자들은 힌두의 나라를 만들기 위해 무슬림뿐만이 아니라 최하층 카스트인 달리트 공격도 서슴지 않고 있다. 지난해엔 인도 최대 주(州)인 우타르 프라데시에서 한 무슬림이 힌두교에서 신성시하는 소고기를 먹었다는 이유로 힌두교 주민들에게 집단 구타당해 사망했다. 지난달에는 소위 ‘암소 수호자들’이라고 자청하는 힌두근본주의자들이 가죽업체에서 일하는 달리트 청년 4명을 암소 가죽을 벗겼다는 이유로 무차별 폭행했다.

더구나 힌두근본주의자들의 지지기반은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지난 5월 인도 북동부 아쌈주 의회 선거에서 인도 역사상 처음으로 BJP가 승리한 일이 단적인 예다. 인도 북동부는 전통적으로 마하트마 간디가 이끌었던 범민족주의 성향인 인도국민회의(INC)의 텃밭이었고 기독교와 이슬람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많기 때문에 BJP가 지지기반을 확대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런 아쌈에서도 힌도 근본주의가 정권을 잡으며 향후 힌두화 작업에 따른 종교, 사회갈등이 가중될 우려가 커지고 있다.

힌두 근본주의자에 의한 최근 일련의 사건은 1990년대 초와 2000년대 초 대규모 종교 폭력이 발생하기 직전의 인도 상황과 흡사하다. 인도에서는 힌두 근본주의 세력이 급성장하는 시기마다 힌두와 무슬림 간의 대규모 종교 폭력 사태가 발생하곤 했다. 92년 아요디야 사태와 2001년 구자라트 사태가 대표적이다. 2014년 인도 총선을 기점으로 힌두근본주의 정치세력의 기반이 또 다시 확대되면서 대규모 종교 충돌이 되풀이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힌두 근본주의는 모디 총리의 지지 기반

인도에서 BJP와 같은 힌두근본주의 정치세력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80년대 중후반부터다. 독립 이후 네루 총리가 이끌었던 INC는 종교나 카스트 등에 상관없이 모든 국민이 단합하자는 범민족주의 이념을 바탕으로 민주 정치를 펼쳐나갔다. INC의 이념은 인도 국민들 사이에 동료의식을 심어줬고, 정치인들의 협력과 합의를 이끌어 내는 정치문화를 조성했다. 하지만 70년대부터 통합의 정치문화가 점차 약화되더니 80년대 중반부터는 종교를 이용해 정치적 지지기반을 확장하려는 정당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정당이 모디 총리가 속한 BJP이다. 1980년 창당된 BJP는 84년 총선에 처음 참여했지만 연방하원 전체 의석 543석 중 단 2석만 획득하는 군소 정당에 머물렀다. 하지만 국민자원봉사단(RSS), 세계힌두협의회(VHP)와 같은 힌두 극우 종교사회운동단체와 연대한 BJP는 단기간에 전국정당으로 자리매김한다. 실제로 BJP는 98년 연방정부 정권을 잡는데 성공하며 2004년까지 인도를 통치했다. 1984년 총선에서 불과 2석을 획득했던 정당이 14년 만에 인도 연방정부 정권을 잡는데 성공한 것이다.

특히 BJP는 RSS나 VHP와 같은 극우 힌두 종교사회단체들이 원하는 ‘힌두의 인도’를 만들기 위해 사회 갈등을 증폭시키는 대립구도를 설정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힌두 대 무슬림’, ‘신화보호 대 신화파괴’ 등의 대립 구도를 만든 것이다.

하지만 BJP는 연방정부 집권에 성공하면서 강성 힌두근본주의 노선과 거리를 두며 사회 안정을 우선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90년대 후반 아탈 비하리 바즈파이가 이끈 BJP 정권과 현 모디 정권도 이같은 양상을 보이고 있다. 집권 여당으로서 국가 통합과 사회 안정을 우선시해야 하는데다가, 이슬람권 국가들은 물론 세속주의를 강조하는 미국 등 세계 주요국과 협력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연방정부와는 달리 대외관계나 외국인 투자유치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주정부는 집권 후 오히려 힌두 근본주의 노선을 정책으로 구체화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예가 과거 우타르 프라데시주의 BJP 주정부와 지금의 라자스탄과 마하라쉬트주의 BJP 주정부다. 물론 모디 총리가 주(州) 총리로 있었던 구자라트주도 예외는 아니다.

BJP는 우타르 프라데시에서 주정권을 잡은 후 무슬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슬람 사원의 확장과 건설을 막기 위해 ‘공공 종교 건물과 장소 법’을 개정해 종교 건물을 신축할 때는 주 정부의 허가를 받도록 했다. 또한 주정부가 주도하는 공교육에서 힌두 민족주의를 고취시키기 위한 이데올로기 교육을 강요했다.

주정부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BJP의 힌두화 작업은 모디 정권하에서도 노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최근 인도 서부 라자스탄 주에서는 ‘종교 화합’을 외치며 세속주의를 신봉했던 네루 초대 총리에 관한 내용이 8학년 사회교과서에서 삭제되었다. 9학년 교과서에는 세계 4대 문명 중의 하나인 '인더스문명'이라는 명칭이 힌두 근본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신두 사라스와티’(Sindhu Sarasvati) 문화로 바꿔 기술되었다. 라자스탄 정부는 인더스 문명도 힌두 문화의 일부분이라는 극우 힌두근본주의 단체인 RSS의 주장을 교과서에 그대로 명시한 것이다. 이와 같은 힌두화의 작업은 BJP가 집권하고 있는 마하라스트라와 구자라트에서도 강화되고 있다.

모디 총리 지원 속 힌두 근본주의 부활

지난 2004년 힌두 근본주의 세력은 바즈파이 BJP 정권을 끝으로 급속히 약화되기 시작했다. 전국적인 지지를 받던 바즈파이가 총리 직에서 물러난 후 지도자의 공백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전통적으로 BJP를 지지해왔던 브라만 계급(카스트 최상위 계급) 마저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먹고 사는 문제였다. 바즈파이가 이끄는 BJP 집권기간 국가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7-8%를 유지했지만, 브라만을 비롯한 대다수 힌두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물가 상승으로 인한 고통이 커졌다. 기업과 교육을 받은 중산층들의 주머니는 두둑해진 반면 힌두적 가치를 지키며 묵묵히 살아가는 대다수 힌두교도들의 경제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따라서 BJP에게는 ‘힌두의 인도’를 만들면서 국민 개개인의 삶을 나아지게 할 지도자가 필요하게 됐다.

이런 조건을 모두 갖춘 나렌드라 모디 구자라트 주총리가 BJP를 비롯한 힌두근본주의 세력을 다시 부흥시킬 희망으로 떠올랐다. 모디는 힌두근본주의 정당인 BJP의 정체성에 맞게 뼛속까지 강성 힌두로 무장되어 있었고 카리스마까지 겸비했다. 게다가 구자라트 주총리시절 경제부흥 능력까지 검증 받은 바 있다.

결국 ‘모디’라는 이름의 브랜드 파워를 앞세운 BJP는 2014년 총선에서 압승하며 10년만에 화려하게 부활했다. 강성 힌두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모디는 이른바 힌디벨트(Hindi Belt)와 암소벨트(Cow Belt)에서 압도적으로 지지를 받았다. 힌두국가 건설과 경제부흥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아 줄 수 있는 모디의 이미지는 북서부 인도 지역 절대 다수 힌두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다.

실제로 인도 28개주 7개 연방직할지(델리 포함) 중에서 BJP는 힌디벨트와 암소벨트에 속한 7개 지역에서만 201석을 획득했다. BJP가 총선에서 획득한 전체 의석수가 282석이니 71%를 이들 지역에서 획득한 것이다. 지난 2009년 총선 보다 166석을 더 획득한 대다수의 의석이 바로 ‘힌두의 인도’를 바라는 힌디벨트와 암소벨트에서 나왔다.

하지만 힌두 근본주의 세력의 확대는 중앙정부를 집권하고 있는 모디 총리와 BJP에게는 양날의 칼로 여겨진다. 정권을 잡고 이후 정권의 안정과 주요 정책 추진 시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장기적으로 사회 안정과 통합을 추구하고 국가발전을 도모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위협이 아닐 수 없다. 힌두 근본주의 세력이라는 양날의 칼을 품고 있는 모디 정권이 이를 어떻게 다루냐에 따라 향후 인도 인도사회의 안정과 BJP의 발전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김찬완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 부원장 겸 인도-아세안학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