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가 2000년 시드니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뒤 올림픽 출전권이 걸린 크로아티아 세계대회에서의 일이다. 우리 선수가 낯선 상대의 저돌적 공격에 밀려 수비로 일관하자 코치는 “태극마크를 달고 뭐가 두려우냐”고 선수에게 일갈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투기 종목은 기선 제압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상대의 기세에 눌려 우리 선수가 제 기량을 펼치지 못하고 있음을 코치가 간파한 것이다. 나라를 대표한다는 그 한마디가 크게 자극이 됐는지 그 선수는 이후 정상적 플레이로 승리를 거머쥐고 출전권을 따냈다.
▦ 2016년 리우 올림픽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75㎏급 동메달 결정전에서 김현우 선수가 크로아티아의 스타르세비치를 6대4로 꺾은 뒤 태극기를 매트에 펼쳐 큰 절을 올리며 오열하던 모습이 짠하다. 금메달을 따 멋지게 태극기를 흔들며 매트 위를 뛰어다니겠다던 다짐이 16강전의 석연찮은 판정으로 좌절된 뒤에도 그는 불굴의 투혼을 발휘했다. 동메달 결정전 1라운드에서 상대의 옆굴리기를 견뎌내다 오른팔 인대를 다쳤는데도 끝까지 버텨낸 정신력은 일반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수준을 뛰어넘었다. 태극마크의 힘이 아니고서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 “국민 여러분께 실망을 시켜 드려 죄송합니다.” “기대에 못 미쳐 미안합니다.” 이번 리우 올림픽에서 예상했던 것만큼 성적을 내지 못한 메달 기대주들에게서 자주 듣는 말이다. 아쉽고 안타까운 자신의 마음보다 가족이나 코치, 국민의 실망감을 더 걱정하고 있다. 국민은 세계 정상급 선수들과의 경쟁에서 최선을 다한 결과임을 믿어 의심치 않지만, 자책하는 선수가 적잖다. 사회에 만연한 1등 주의의 산물이라는 해석도 있지만, 태극마크가 주는 부담이자 책임감의 표현이다.
▦ 대한체육회 등록 선수는 모두 13만3,000여명. 이들은 모두 태극마크를 꿈꾸며 땀과 눈물을 흘리고 있다. 리우 올림픽에 출전한 204명은 단순히 기량이 남보다 앞서서가 아니라 숱한 좌절과 부상, 슬럼프, 경쟁의 중압감을 딛고 일어선 결과로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았다. 한 조각의 천에 불과하지만 국민의 기대까지 더해진 태극마크는 천금만큼이나 무겁다. 종반으로 접어든 리우 올림픽에서 우리 국가대표 선수들이 후회 없는 경기로 4년 간 흘린 땀과 눈물의 보답을 제대로 받았으면 한다.
정진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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