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함께 책을 만든 번역자를 만나서 긴 수다를 떨었다. 뉴질랜드에 사는 그도 반려인이라서 각자 동물 가족의 안부를 묻던 중 반려견 루비를 입양하게 된 이야기를 들었다.
루비는 생후 두 달도 안됐을 때 동물학대를 당하다 구조되었다. 그는 이웃집에서 개가 고통스럽게 우는 소리를 듣고 경찰에 신고 했다. 경찰이 집에 들이닥쳤을 때 개는 이미 내장이 파열될 정도로 학대를 당한 상태였다. 수의사는 살기 힘들 거라고 했지만 개는 장시간의 수술을 견디고 살아남아서 그의 반려견이 되었다. 어린 개의 생명력에, 생명을 포기하지 않는 그의 의지에 감동했다. 그리고 학대자가 받은 형량에 놀랐다. 그 남자는 징역 1년 8개월, 벌금 200여만 원, 사회봉사 6개월을 선고 받았다. 우리나라였으면 어땠을까.
그를 만난 다음날 일요일 아침 동물 프로그램에는 고양이 공장이 나왔다. 강아지 공장과 똑같이 비참하고, 잔인하고, 참혹했다. 엄연한 학대의 현장이다. 그럼에도 폐쇄는커녕 100만 원 벌금이 전부라는 말에 함께 보던 가족들은 놀랐다. 현행법상 폐쇄도, 처벌도 할 수 없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뿐이랴. 얼마 전에는 길고양이 수백 마리를 산채로 도살한 혐의로 기소된 사람에게 실형이 아닌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너무나 많은 사안에서 우리는 시민사회와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의 간극이 크다는 것을 느낀다. 그들은 우리와 다른 세상에 사는 걸까? 동물 문제만 봐도 그렇다. 갇힌 동물의 복지에 대한 요구가 높아서 19대 국회 때 당연히 통과될 줄 알았던 동물원법은 ‘사람 복지도 안 됐는데 동물 복지는 무슨.’이라며 딴지를 거는 국회의원들 덕에 알맹이가 몽땅 빠진 채 통과됐고(입법부), 농식품부는 반려동물의 인터넷 판매를 허용하고, 없애야 마땅한 경매업을 신설해서 반려동물 산업을 육성하겠다고 하고(행정부), 법원은 동물 학대를 한 사람에게 동물보호법만으로 실형을 선고한 일이 한 번도 없을 정도로 동물문제를 하찮게 여기는(사법부) 게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지난 5일 동물보호단체 카라는 개식용 종식을 위한 국제 컨퍼런스를 열었다. 개식용 문제를 본격적인 논의의 장으로 끌어올린 의미 있는 자리였다. 대만, 중국에서 개식용 문제를 종식시켜 나가는 과정이 소개되었는데 대만은 도살 금지, 사체 판매 금지, 식용 금지 등 순차적으로 법을 개정해 나가고 있었다. 중국은 식용으로 팔릴 개 수백 마리를 태운 트럭을 고속도로에서 급습해서 구조하는 활동이 활발했다. 그게 가능한 건 개는 공식 증명서가 있어야 하는데 불법 유통 개들은 그게 없으므로 압수가 가능했다. 동물이 법률상 재산으로 간주되어서 학대 받는 동물을 보고도 구조하지 못해 무기력한 우리나라와 달랐다.
중국의 사례를 들으니 우리나라도 반려동물등록제만 강화해서 적용해도 개식용 농장과 강아지, 고양이 공장에 타격을 줄 수 있겠구나 싶으면서도 행정기관과 입법부, 사법부에 그런 의지가 있을까 절망했다. 이날 개식용 반대에 찬성하는 국회의원도 몇 명 참석했는데 개식용에 친화적인 중년 남성의 비율이 높은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라도 할 수 있을까.
사회에 만연한 동물 학대를 반대하는 것이 동물‘만’ 행복한 나라를 만들자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 동물만 행복하고 인간은 불행한 나라는 없고, 동물은 불행한데 인간이 행복한 나라도 없다. 동물과 인간의 행복은 정비례하고, 동물뿐만 아니라 아동, 여성, 노약자 등 약자가 행복한 나라여야 인간도 행복하다. 그러니 ‘사람 복지도 안 됐는데 동물 복지는 무슨.’이라는 국회의원들의 말은 이해관계에 얽힌 낮은 생명의식을 드러낸 것에 불과하다. 누구도 학대 받지 않은 세상을 만들자는데 순서가 어디 있을까.
사회는 약자 대상 범죄에 더 강력하게 죄를 물어야 한다. 그래서 ‘약자인데 별 수 없잖아.’가 아니라 약자여서 폭력으로부터 더 보호받는 세상이 우리가 꿈꾸어야 할 세상이다.
김보경 책공장더불어 대표
참고한 책: 개식용 종식을 위한 국제 컨퍼런스 자료집, 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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