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 백중이다. 백중은 음력 7월 15일로 백종(百種), 중원(中元), 망혼일(亡魂日)이라고도 한다. 이 무렵이면 과실과 채소가 많이 나와 옛날에는 100가지 곡식의 씨앗(種子)을 갖춰 놓았다는 의미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육지에서는 백중날이면 농부들이 음식과 술을 먹고 마시며 노는 풍습이 있다는데, 제주에서는 전혀 다른 의식이 치러진다. 대표적이 것이 마을 본향당의 신에게 제사 지내는 ‘마불림제’와 목축의 신에게 제사 지내는 ‘테우리코시’가 있다.
마불림제는 신에게 바친 옷에 장마로 곰팡이가 피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햇빛과 바람을 쐬어주는 제사라는 의미다. 마을에 따라 그 날짜가 약간씩 차이가 있는데, 대부분 음력 7월 13~15일 사이에 치른다. 마불림제는 마을본향당에서 굿을 하며 신에게 풍년과 우마의 번식을 기원하는 의식으로, 농경과 목축문화가 혼합된 형태라 할 수 있다.
반면 테우리코시는 목축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며 우마가 병에 걸리지 많고 번성하게 해 주십사 비는 고사다. ‘테우리’는 목동을, ‘코시(혹은 코사)’는 고사를 이르는 제주 말이다. 테우리코시는 보통 백중날 자시에 목장 안에 위치한 오름의 꼭대기에 올라가 집안마다 정성스럽게 차린 음식을 목축의 신에게 바치는 의식이다.
제물로는 삶은 닭과 과일, 메(밥), 떡, 술 등을 준비하는데, 오름 위의 목초지에 새(띠)를 깔고 그 위에 제물을 진설한다. 특이한 것은 쇠 수저가 아닌 나무로 만든 젓가락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제주 신화에 의하면 목축의 신은 자청비(세경할망)의 머슴이었던 정수남을 이르는 말이다. 세경본풀이에 보면 자청비의 남편인 하늘나라 문도령은 상세경으로 사계절의 운행과 재해 등 자연현상을 관장하고, 중세경인 자청비는 오곡의 열매를 생산하는 농경의 신이며, 하세경인 정수남은 가축을 돌보고 번성시키는 목축의 신으로 자리 잡았다고 전해진다.
예전 제주도의 중산간 일대 전체가 목장이었으니 목축의 신에게 제사 지내는 테우리코시도 널리 성행했을 것으로 짐작되나 지금은 극소수의 마을에서만 행해지고 있다. 주변에 목장이 산재한 구좌읍 송당리의 경우 야간에 목장 안의 오름에서 제대로 격식을 갖춘 테우리코시를 하고 있다. 간혹 마을에 따라 밤이 아닌 낮에 목장에서 제를 지내는 경우도 있다. 송당 인근마을인 대천동과 표선면 성읍리가 대표적인 사례로 목축종사자들이 모여 큰 돼지를 잡아 제물을 차려 제사를 지낸 후 음식을 나누어 먹기도 했다. 지난 2005년 신화축제 때에는 대낮에 마을인근인 아부오름 정상에서 테우리코시를 재현해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해 호응을 얻기도 했다.
백중날의 다른 의식으로 한라산의 산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백중와살’도 있다. 백중을 전후해 사람들이 한라산 자락의 갖가지 열매를 따게 되는데, 이때 백중와살이 허전하다고 시샘을 하여 풍운조화를 일으킨다며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목장이 많은 중산간 지역에서는 대체로 제사를 조용하게 지내는데, 해안가 마을에서는 백중에 모두가 바다로 나가 해산물을 채취한다. 이때가 되면 살찐 소라 등이 많이 나온다고 하여 야간까지 횃불을 들고 해산물을 잡는다.
지금까지 전해지는 백중날의 또 다른 의식으로 백중 물맞이가 있다. 백중에 한라산의 계곡이나 바닷가의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을 온몸으로 맞으면 위병, 허리병, 열병 등에 특효가 있다고 전해진다. 특히 백중날 폭포수는 약물이어서 그 효험이 더욱 크다며 일부러 마시기도 했다.
삼복더위에 콩밭과 조밭에서 땀 흘리며 일을 해야만 했던 농부들이 이날만큼은 편안하게 쉬며 즐겼던 의식들이다. 연일 계속되는 폭염에 심신이 피곤한 요즘, 하루쯤 쉬면서 재충전을 하고자 했던 옛사람들의 여유를 따라 해보는 것도 좋겠다.
강정효 (사)제주민예총 이사장 hallasan195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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