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우 올림픽의 리세광(왼쪽)-런던 올림픽의 양학선. /사진=연합뉴스
[한국스포츠경제 김지섭]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남자 기계체조 도마 종목 시상식에 '디펜딩 챔피언'은 없었다. '도마의 신'이라고 불렸던 1인자 대신 시상대 맨 위에 오른 선수는 북한의 체조 영웅 리세광(31)이었다. 리세광은 양학선(24ㆍ수원시청)이 부상으로 빠진 올림픽 도마 종목을 접수했다.
리우에서 리세광의 적수는 없었다. 그는 16일(한국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리우 올림픽 경기장에서 열린 대회 남자 기계체조 도마 결선에서 1, 2차 시기 평균 15.691점을 받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예선부터 가볍게 1위로 통과하며 일찌감치 '금빛 착지'를 예고했다. 2위는 러시아의 데니스 아블랴진(15.516점), 3위는 일본의 시라이 겐조(15.449점)가 차지했다.
리세광은 결선 1, 2차 시기에서 모두 난도 6.4의 기술에 도전했다. 1차 시기 때는 '드라굴레스쿠 파이크'(도마를 앞으로 짚은 뒤 몸을 접어 2바퀴 돌고 반 바퀴 비틀기)를 시도했다. 착지 후 한 발이 뒤로 빠지긴 했으나 비교적 안정적인 착지로 15.616점을 받았다. 2차 시기에서는 자신의 이름을 딴 기술 '리세광'(도마를 옆으로 짚은 뒤 몸을 굽혀 두 바퀴 돌며 한 바퀴 비틀기)을 거의 완벽하게 소화해 15.766점을 획득했다.
결선에 오른 8명의 선수 중 6.4의 기술을 두 차례 시도한 선수는 리세광이 유일했다. 리세광의 압도적인 연기는 2012년 런던 올림픽의 양학선을 떠올렸다. 대부분의 출전 선수들이 난도 6점대의 기술을 시도했지만 양학선은 당시 국제체조연맹(FIG) 채점 규정상 가장 높은 점수인 7.4에 해당하는 최고 난도 기술이자 자신의 이름을 딴 특화된 기술 '양학선1'(도마를 앞으로 짚고 세 바퀴를 비트는 기술)을 보여주며 한국 체조 사상 첫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양학선1'은 현재 난도 6.4로 조정됐다.
2010년 국제 무대 데뷔 첫해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도마 금메달을 목에 걸며 '도마의 신' 등장을 알린 양학선은 2011년 세계선수권 도마까지 휩쓸었다. 그리고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냈고, 2013년 세계선수권에서 2연패에 성공했다. 세계 최강자로 승승장구하던 그는 '양학선2'(도마를 옆으로 짚고 세 바퀴 반을 비트는)를 완성하는 등 끊임없이 노력하며 차별화에 나섰다.
그러나 2014년부터 잇단 부상 악재에 시달려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그 해 인천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오른 햄스트링을 다쳐 도마 은메달에 그쳤다. 지난해 광주 하계유니버시아드에서도 햄스트링 부상이 심해져 기권해야만 했다. 올해 3월에는 훈련 중 아킬레스건 파열로 올림픽 2연패 꿈을 접었다.
그 사이 리세광이 도마를 지배했다. 2014년 세계선수권 우승, 인천아시안게임 금메달에 이어 2015년 세계선수권 2연패 그리고 이번 리우 올림픽마저 제패하며 세계 도마 1인자로 자리매김했다. 리세광은 시상식을 마친 뒤 "(양)학선 선수가 부상으로 못 나왔는데 체조를 학선 선수가 대표하는 게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양학선이 없었기 때문에 금메달을 따낸 것이 아니라 실력으로 얻은 결과라는 걸 강조했다.
물론 양학선이 정상적인 몸 상태로 리우 올림픽에 출전한다고 해도 금메달이 보장된 것은 아니지만 리세광과 함께 자신의 이름을 건 기술로 '남북 도마 대결'을 보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또한 리세광이 '리세광'을 깔끔하게 성공한 뒤 기뻐하는 장면을 봤던 한국 팬들은 '양학선1'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양학선의 모습이 4년 전 더욱 그리워졌다.
김지섭 기자 onion@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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