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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연주자 전경호씨 “큰 울림 주는 연주자 되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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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연주자 전경호씨 “큰 울림 주는 연주자 되고파”

입력
2016.08.1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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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타악기 연주자 전경호씨가 12일 서울 서초구 한예종 서초동 캠퍼스 연습실에서 마림바를 연주하고 있다. 도미넌트 에이전시 제공
시각장애인 타악기 연주자 전경호씨가 12일 서울 서초구 한예종 서초동 캠퍼스 연습실에서 마림바를 연주하고 있다. 도미넌트 에이전시 제공

“오케스트라 타악기 연주자는 자리를 옮겨가면서 여러 악기를 연주해야 하기 때문에 시각장애인은 꿈도 꾸지 말라고들 했습니다. 지휘자를 볼 수도 없으니까요. 하지만 장애가 있더라도 꿈을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 뜻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졸업을 앞두고 생애 첫 독주회를 여는 전경호(28)씨는 15일 전화통화에서 “이번 공연을 통해 관객들이 타악기를 친숙하게 느끼게 됐으면 좋겠다”며 이렇게 말했다. 조기출산아에게 가끔 일어나는 미숙아망막증 때문에 태어날 때부터 앞이 보이지 않는 1급 시각장애인인 그는 20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베어홀에서 첫 독주회 무대에 오른다. 공연명은 ‘드리밍 퍼커션’. 타악기 연주자가 되기 위해 키웠던 자신만의 꿈을 관객과 공유하겠다는 뜻으로 지었다. 이번 공연을 기획한 황도민 도미넌트 에이전시 대표는 “국내 시각장애인 타악기 연주자가 독주회를 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전씨는 1부에서 3대의 팀파니로 구성된 알렉산더 체레핀의 ‘팀파니를 위한 소나티나’, 네이 로사우로의 ‘마림바 협주곡’ 등을 연주하고 2부에선 타악기를 위해 편곡된 쇼팽의 ‘즉흥환상곡’, 사라사테의 ‘치고이너바이젠’을 들려줄 계획이다. “치고이너바이젠은 정식으로 타악기를 배울 때 처음 배운 곡입니다.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할 때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어려운 곡을 골랐죠. 선생님의 동작을 하나하나 더듬어가며 피땀 흘려 익힌 곡이라 더욱 애착이 갑니다. 원래 바이올린 곡인데 타악기의 울림을 잘 느낄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했습니다.”

가요를 즐겨 듣던 전씨가 타악기에 빠져든 건 한빛맹학교 중학교 3학년 때 밴드부에서 드럼을 맡으면서다. 그는 “우연히 요한 슈트라우스의 음악을 듣는데 몸을 휘감는 듯한 타악기의 울림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타악기를 배우고 싶다는 그의 말에 모두들 불가능할 것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던 중 희망이 생겼다. 한빛맹학교에서 2년제 전문학사를 취득할 수 있는 음악전공과를 신설하면서 음악 전공 교사를 잇따라 영입한 것이다. 그 가운데 이철수 당시 한빛맹학교 타악앙상블 전임교사는 ‘한번 해보자’며 전씨에게 용기를 북돋워줬다.

타악기를 배우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점자 악보를 손으로 읽어 완벽하게 외운 뒤 마음속으로 한 장씩 넘겨가며 연습해야 했고, 실로폰처럼 건반을 두드려 소리를 내는 마림바 특성상 건반의 생김새와 위치를 정확히 파악해야 했다. 그는 이 교사가 시범을 보이면 팔 모양 등을 하나하나 만져보고 감을 익힌 뒤 하루 6~8시간 반복하며 연습했다. 그만큼 실력도 일취월장했다. 2012년 한예종에 특별전형으로 입학했지만 당시 교수진에게 “비장애인 학생들과 비교해도 실력이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들을 정도였다. 전씨의 다음 꿈은 오케스트라 단원으로서 타악기를 연주하는 것이다. 그는 “시각장애인 타악기 연주자가 오케스트라 단원이 된 전례가 없다”며 “내가 실력을 갖추는 것이 우선이지만 장애인 연주자가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연주할 수 있는 사회적 풍토도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여러 악기와 함께 연주할 때 연주 타이밍을 맞춰주는 시각장애인용 보조공학기를 개발할 수 있는지도 알아볼 생각이다. 미국에서 어학연수를 마친 뒤 대학원에 진학해 음악 공부를 이어가겠다는 계획도 있다. 그는 “쉽지 않은 길을 가지만 음악으로 사람들에게 큰 울림과 힐링을 주는 연주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고경석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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