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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맞춤형 보육 유감

입력
2016.08.1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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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맞벌이 여부에 따라 어린이집이 아이(0~2세) 돌보는 시간을 종일반과 맞춤반으로 나눈 맞춤형 보육이 시행된 지 한 달 반이 지났다. 이에 맞춰 정부도 지난 주 ‘맞춤형 보육 1개월, 어린이집은 부모맞춤형으로 변화 중’이라는 홍보성 보도자료를 냈다. 하지만 보육현장 분위기는 영 딴판이다. 학부모, 어린이집 교사, 시민단체 어디서도 만족스럽다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직장맘들은 나아진 게 없고 전업맘들은 고달파졌다. 직장맘들이 걱정 없이 하루 종일(오전 7시30분~오후 7시30분)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도록 하자는 게 제도 도입 목표 중 하나였지만, “오후 5시 넘어서 아이를 데려가겠다”는 말을 어린이집 눈치를 보며 꺼내야 하는 사정은 그대로다.

전업맘들은 속이 타들어간다. 온라인 육아 커뮤니티에서 “자다가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아이를 데려오려니 속상하다”, “맞춤반이라고 간식도 안 줘 눈물이 핑 돌았다”(이는 불법이다)는 하소연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맞춤반 보육료 지원액이 종일반보다 적어 대다수 어린이집은 전업맘에게 긴급바우처(월 15시간 추가이용권ㆍ6만원) 사용을 종용하는데 안그래도 신경이 예민해진 전업맘들은 이때 더 상처받는다. 이들은 “긴급바우처를 사용하려고 이유를 매일 써내야 하는 게 호구조사 같아 싫다”고 말한다.

연초 정부 지침 변경으로 교사 한 명이 돌봐야 할 원아 숫자가 늘어난 보육교사들 사정은 어떨까. 교사는 늘지 않았는데 업무는 더 늘었다. 식사 습관도 다르고 낮잠 시간도 제각각인 아이들을 다시 종일반과 맞춤반으로 나눠 하원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맞춤반 운영계획서 작성과 설명회 참석 등 잔무도 많아졌다. 보육교사 처우는 더 열악해질 가능성도 높다. 교사들은 “어린이집 수입이 감소해 고용불안이 심화됐다. 이제 임계점에 도달했다”(김호연 민주노총 보육협의회 의장)고 호소한다.

가정보육과 시설보육 중 무엇을 택할지 학부모 선택 폭을 넓혀 주겠다는 등 맞춤형 보육 도입 취지는 적절했다. 하지만 학부모나 보육교사들에게 외면받고 있는 이유는 뭘까. 제도를 설계할 때 학부모와 보육교사 목소리를 담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모 맞벌이 여부에 따라 어린이집이 아이(0~2세) 돌보는 시간을 종일반과 맞춤반으로 나눈 맞춤형 보육이 시행된 지 한 달 반이 지났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부모 맞벌이 여부에 따라 어린이집이 아이(0~2세) 돌보는 시간을 종일반과 맞춤반으로 나눈 맞춤형 보육이 시행된 지 한 달 반이 지났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반면 “우리도 힘들다”고 앓는 소리를 하는 다수 어린이집 원장들 사정은 좀 다르다. 이들은 제도 시행 직전까지도 파업을 하겠다며 실력행사를 했고, 이게 통했다. 불필요한 시설보육 수요를 줄이려면 맞춤반과 종일반 지원액이 차이가 나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이들 압박에 두 손을 들었고 맞춤반 기본보육료를 감액하겠다는 계획을 포기했다. 그 결과 맞춤반ㆍ종일반 지원액 차이는 한 달에 3,000원(0세 기준) 밖에 안된다. 학부모 선택권을 넓히는데 필수적인 가정 양육 수당 인상 얘기는 나오지도 않았다. 대다수 어린이집 원장에게 제도 변화는 ‘찻잔 속 태풍’같아 보인다.

따지고 보면 사태가 이렇게 꼬인데는 이들 탓도 크다. 무상보육이 도입될 무렵인 2011년말 3,4세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게 당시 전문가들 생각이었다. 하지만 정작 영유아(0~2세) 무상보육이 먼저 시작됐다. 정부 지원금이 3,4세보다 많기 때문이다. 대선을 앞두고 어린이집 원장들이 정치권을 부추킨 게 영향을 줬다고 당시 사정을 잘 아는 이는 설명한다. 이는 이후 어린이집 난립, 전업맘 자녀 가수요 발생, 아동 숫자 감소로 인한 어린이집 경영난, 집단행동을 통한 무리한 지원 요구로 이어졌다.

지난 6월 한 어린이집 원장 단체가 맞춤형 보육 시행을 유보하자는 취지로 간담회를 열자 70명이 넘는 국회의원이 왔다고 한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한 관계 부처 공무원은 “국회 간담회 자리에 이렇게 많은 의원이 온 것은 처음 봤다”고 씁쓸해 했다. 과도하게 커진 어린이집 원장들 힘을 적절히 견제하고 학부모와 교사 목소리에 힘을 보태 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맞춤형 보육 도입에서 드러난 난맥상이 재연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이왕구 사회부 차장 fab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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