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노숙소녀 사망사건’ 등 재심 이끌어낸 박준영 변호사
사회적 약자를 위한 무료 변론에 힘써온 공익 변호사가 파산위기에 처했다는 안타까운 사연에 시민들의 돕기 성금이 쏟아지고 있다. 허위자백ㆍ회유 등 수사 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사회적 약자의 권리 침해에 집중해 변호하고 있는 박준영(43ㆍ사법연수원 35기) 변호사가 그 주인공이다.
박 변호사는 이번 달까지 열 달째 밀린 월세 때문에 당장 수원지법 앞 사무실을 비워야 할 처지에 놓이자 지난 11일 사회에 도움을 청했다. 포털사이트 다음의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인 ‘스토리펀딩’에 자신의 이야기를 알리고 후원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1억원을 목표로 모금을 시작했는데 불과 사흘 만인 14일 시민 2,869명의 도움을 받아 목표 금액을 달성했다.
박 변호사는 “사회적 약자를 생각하고 정의를 바라는 시민들의 마음이 이렇게 크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며 “최근 수십억원의 수임료를 받고 문제를 일으킨 일부 변호사에 대한 국민 분노가 큰 상황에서 반사이익을 본 것도 같다”고 말했다.
그는 형사사건 재심 전문 변호사다. 특히 미성년자ㆍ지적 장애인 등이 범인으로 지목돼 옥살이한 석연치 않은 사건들을 접하고 수년에 걸쳐 당사자들을 찾고 관련 기록을 모으는 등 10년도 더 지난 일을 다시 파고들었다. ‘약촌오거리 살인사건’ ‘삼례 3인조 강도치사사건’의 재심 확정판결은 이렇게 나왔다. 극히 이례적인 일반 형사사건의 재심을 그는 벌써 3차례나 받아냈다. 재심 결정이 난 뒤 검찰이 항고해 아직 확정판결이 나지 않은 ‘무기수 김신혜 사건’까지 더하면 4차례다. 그는 재심 사건을 모두 무료로 진행했다.
박 변호사는 “변호인 활동을 하다 보니 억울한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며 “그 사람들에게 뭔가를 베푼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법률적 경험과 지식이 있는 내가 이런 일을 하는 게 형평성에 맞고 배분적 정의에 부합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지난해 ‘제3회 변호사 공익대상’으로 박 변호사를 선정했다. 변호사공익대상은 인권옹호, 사회적 약자 지원 활동으로 공익 실현에 기여한 변호사 개인과 단체에 주는 상이다. 하지만 재심 사건에 집중하느라 돈을 벌 수 있는 사건을 맡지 못하면서 박 변호사의 재정은 점점 악화됐다. 적금을 모두 깨야 했고 마이너스 통장도 한도가 차 더 이상 돈을 구할 방법이 없었다. 한때 변호사 2명과 직원 4명을 고용했지만 월급을 감당할 수 없어 지난해 모두 내보내야 했다.
당초 수원을 떠날 생각까지 했던 그는 이번 후원금을 통해 수원에서 변호인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다. “법과 제도를 만드는 분들에게 현장에서 찾은 문제점을 분명하고 실질적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재심해서 무죄가 나오면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체계적으로 밝혀서 시스템을 보완하는 것이죠. 사법 시스템 운용 과정에서 사회적 약자의 권리 침해를 막는 일에 더욱 집중할 생각입니다.”
고경석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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