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우 통한의 동메달
고질적 판정시비로 퇴출 직전에
잇단 개혁 의지 살아남았지만
또 러시아 봐주기 편파판정 얼룩
세계레슬링연맹서 러 영향력 막강
회장ㆍ심판진 절반 이상 구소련권
러 선수에 온갖 편법 동원 金안겨
리우올림픽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75kg급 김현우(28ㆍ삼성생명)의 16강전 탈락, 편파판정 논란에 이른바 ‘러시아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다는 설이 힘을 얻고 있다.
레슬링은 고질적인 판정 시비로 2013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2020년 도쿄 올림픽 퇴출 종목으로 꼽혔다. 하지만 가까스로 살아남으면서 리우 올림픽에서 볼 수 있게 됐다. 갖은 비리와 횡령 등 추문 속에 장기 집권했던 라파엘 마르티네티 국제레슬링연맹(FILA, 세계레슬링연맹으로 명칭 변경) 회장의 사퇴를 이끌어 내는 등 개혁의 의지를 보였다. 또 연맹은 제도 변경 등을 통해 레슬링을 박진감 넘치는 경기로 유도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리우올림픽 첫날 경기부터 고질적인 판정 시비가 재현됐다. 판정 논란의 중심에는 러시아가 있다.
세계레슬링연맹(UWW)은 러시아의 영향력이 막강하다. UWW회장인 네다드 랄로비치는 세르비아 출신이지만 러시아와 긴밀한 인연을 맺고 있다. 억만장자 사업가인 랄로비치는 러시아중앙은행 등 러시아 국영 기업들과 연계된 사업을 하고 있다. 연맹의 실무 부회장 자리는 러시아가 차지하고 있다. 리우올림픽 심판진 40명 중 25명도 러시아와 구 소련 출신이다. 현재는 다른 국적이지만 이들이 선수로 뛸 당시에는 대부분 소비에트연방 소속이었다. 이들의 영향력이 막강해 경기에서도, 비디오 분석에서도 러시아 선수에게 유리한 판단이 충분히 가능하다.
실제 김현우는 15일 로만 블라소프(26ㆍ러시아)와의 16강전 경기종료 3초를 남겨놓고 4점짜리 기술을 성공시켰으나 심판이 2점만을 인정해 뒤집기에 실패해, 동메달 결정전으로 밀려나야 했다.
2012년 런던 올림픽 66㎏급 금메달리스트인 김현우와 75㎏급 금메달리스트 블라소프가 만난 16강 경기는 사실상 결승전이나 마찬가지였다. 김현우는 종료 30여초를 남기고 3-6으로 뒤진 상황에서 파테르를 얻어 가로들기 기술을 완벽하게 성공시켰지만 심판진은 4점이 아닌 2점만 부여했다. 가로들기 기술은 상대 몸이 매트에 닿아 돌아가면 2점, 완전히 뜬 상태에서 회전하면 4점이 주어진다. 안한봉 감독은 레드카드까지 받으며 강력하게 항의했지만 판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더구나 블라소프는 리우 올림픽에 나가기 위한 러시아 국가대표 선발전을 통과하지 못했다. 하지만 러시아 레슬링연맹 회장이 올림픽 디펜딩 챔피언이라는 이유로 특혜를 줘 출전이 가능했다.
블라소프는 이날 김현우의 동메달 결정전 상대인 보조 스타세비치(28ㆍ크로아티아)와의 준결승전에서도 심판의 도움으로 승리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블라소프는 6-0으로 앞선 경기 막판 스타세비치에게 초크(목조르기)기술을 당했다. 블라소프는 잠시 정신을 잃고 쓰러졌지만 심판은 스타세비치에게 단 2점만을 부여했다. 레슬링 규정에 의하면 선수의 두 어깨가 매트에 닿은 뒤 2초의 시간이 지나면 곧바로 승리가 결정된다.
2008년 레슬링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자 미국의 밴 아스크렌은 이날 경기에 대해 “이건 총체적 난국이다. 심판들은 자신들의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 포상으로 점수를 부여했을 뿐이다”라고 독설을 날렸다. 미국 스포츠 전문매체 야후 스포츠도 “두 번째 금메달을 따는 과정에서 블라소프는 레슬러의 모습이 아니었다. 온갖 논란 속에 그는 금메달을 낚아챘다”고 표현했다.
한편 김현우는 블라소프와의 경기 도중 오른 팔꿈치 탈골 부상을 당했음에도 스타세비치를 꺾고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당초 안한봉 감독은 세계레슬링연맹에 제소하겠다고 했으나, 입장을 바꿔 제소하지 않기로 했다. 그는 “독일인 심판위원장이 ‘결과는 번복이 없다’고 했다”며 “차후에 보고서를 통해 잘못이 있으면 관련 심판들을 징계하겠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이어 “승부를 뒤집지 못하는 상황에서 다른 경기도 있어서 피해가 될까 봐 제소하지 않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김기중 기자 k2j@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