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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빛 세상은 뭔가 찡하게 통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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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빛 세상은 뭔가 찡하게 통하더라

입력
2016.08.15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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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화 전공하며 쪽빛에 매력

시골로 돌아와 농사 지으며 염색

화포 흔적 찾아 중국, 태국으로

전통 마을의 뭉클한 기억 담아

11일 충북 괴산군에서 만난 염색가 신상웅씨가 쪽물로 채워진 항아리에 천을 담가 물들이고 있다. 쪽물에 들였다 말리기를 수 차례 반복해야 진한 쪽빛이 든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11일 충북 괴산군에서 만난 염색가 신상웅씨가 쪽물로 채워진 항아리에 천을 담가 물들이고 있다. 쪽물에 들였다 말리기를 수 차례 반복해야 진한 쪽빛이 든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왜 하필 쪽빛이냐고요? 이유가 있나요?"

십수 년간 쪽물만을 들여온 염색가 신상웅(48)씨는 지난 11일 충북 괴산군의 작업실에서 가진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색처럼 직관적이고 개인적인 취향에 속하는 영역이 어디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그냥 좋을 뿐”이라고 무심한 척 하면서도 이내 “다양한 색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게 쪽빛의 가장 큰 매력”이라며 “색도 가장 단단하다”고 덧붙이는 그의 모습에는 쪽빛에 대한 애정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서울대 미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할 때부터 벌교의 염색 공방을 드나들었지만, "자신이 이 일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고 신씨는 말했다. “스스로가 너무 아까워” 그저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고 싶지 않았고, 서른 살을 앞둔 겨울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에서 ‘꼭 아등바등 살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렇게 서울 생활을 접고 유년 시절을 보낸 충북 괴산군으로 돌아와 택한 것이 바로 ‘염색’이었다. “농사를 지으면서 할 수 있어 좋았다”는 단순한 이유로 택한 것이 쪽빛이었다.

신씨가 쪽물에 담가 젖은 천을 마당 한 켠에 널고 있다. 볕이 뜨거울 때 말려야 '쨍'한 빛깔이 나오기 때문에 쪽물을 들이는 작업은 주로 여름에 이뤄진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신씨가 쪽물에 담가 젖은 천을 마당 한 켠에 널고 있다. 볕이 뜨거울 때 말려야 '쨍'한 빛깔이 나오기 때문에 쪽물을 들이는 작업은 주로 여름에 이뤄진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쪽빛은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아름다웠지만 단순히 물만 들이는 일이 때로 단조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과연 나는 어디쯤에서 바로 이 색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도 있었다. 그러던 중 과거 문헌에서 무늬를 새긴 천을 뜻하는 ‘화포’라는 단어를 보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푸른 천 위에 무언가를 그린다는 것은 곧 “메시지를 남긴다는 것”이자 “푸른색이 무한히 확장되는 것”이었다.

2005년 겨울 그는 전통 화포의 흔적을 좇아 떠났다. 중국, 태국, 베트남, 라오스, 일본의 마을 구석구석을 돌며 그는 쪽빛과 전통 화포를 눈에 담았고, 그들의 생활과 문화를 피부로 느꼈다. 여행은 염색 작업을 하지 않는 겨울에 주로 이뤄졌고, 그렇게 무작정 떠났던 여행이 어느덧 10여년이 됐다. 여행하며 남긴 메모들은 한데 묶여 지난 7월 책 ‘쪽빛으로 난 길’(마음산책)을 출간했다.

2006년 겨울 찾은 중국 귀주에는 먀오족이 전통 방식으로 물들인 천이 마을 여기저기에 걸려 있었다. 마음산책 제공
2006년 겨울 찾은 중국 귀주에는 먀오족이 전통 방식으로 물들인 천이 마을 여기저기에 걸려 있었다. 마음산책 제공

전통을 좇는 건 쉽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언어가 잘 통하지 않았고, 목적지는 감에 의존해 찾는 일이 많았다. 하루 만 원 안팎의 빠듯한 경비와 마땅치 않은 교통수단도 난관이었다. 겨우 찾은 버스는 '일정 인원을 충족해야 운행한다'는 정책 탓에 다른 손님이 올 때까지 출발하지 않아 며칠씩 기다리기 일쑤였다. 그러나 신씨는 "그런 일로 스트레스 받지는 않았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그저 그 사람들 방식에 적응하면 된다"는 것이다. 며칠씩 걸려 어렵게 찾아간 목적지에서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신씨는 “대단한 뭔가가 있으면 물론 좋겠지만, 없다 해도 찾으러 다닌 과정 자체가 나에겐 큰 의미"라고 말했다. 10년 동안의 여행은 그렇게 매우 자연스럽게 흘러 다니는 과정이었다.

“나 홀로 염색하면서 남들도 저 멀리 어딘가에서 같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 받고 싶은 마음이 컸다”는 신씨는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같은 일을 하는)우리 사이엔 뭔가 ‘찡’한 게 있었다"고 말했다. “간단한 의사소통 외에는 그저 쳐다보는 것 밖에 할 수 없었지만 눈빛으로 ‘나는 너를 지지해’라는 메시지가 전해졌다”는 것이다. 긴 여정의 원동력은 바로 그 가슴 뭉클한 기억들이다.

물론 전통의 운명은 어디나 다 비슷하다. 오랜 세월의 흔적인 전통이 빠르게 사라져가고 있는 마을도 있다. 그러나 신씨는 "변한다는 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라며 “전통의 자리가 좁아지는 것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한꺼번에 전통을 버리지는 않았으면 한다”며 그는 덧붙였다. “전통적인 방식을 원하고 찾는 누군가가 있을 때, 어딘가에는 그 전통이 남아 있었음 좋겠어요. 저는 그 ‘선택의 여지’를 위해 일하고 싶어요.”

작업 후 앞마당에 드리운 그늘에서 더위를 식히고 있는 신상웅씨의 모습.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작업 후 앞마당에 드리운 그늘에서 더위를 식히고 있는 신상웅씨의 모습.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괴산=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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