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8월 15일
대한민국의 8월 15일은 아주 특별한 날이다. 식민지에서 해방된 날이고, 정부가 수립된 날이고, 전쟁으로 부산까지 피난 갔던 정부가 서울로 되돌아온 날이다. 역대 정부는 통일 관련 담화를 이 날에 맞춰 발표했고, 경부선 통일호와 새마을호가 이 날 달리기 시작했다. 남북 이산 가족이 서울과 평양에서 상봉했고, 수많은 수감자들이 광복절 특사로 자유를 맞이했다. 그리고 1989년 오늘, 그리 알려지지 않은 27세의 학생운동가 이내창이 연고도 없는 전남 여수의 한 해변에서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됐다. 그의 죽음의 비밀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이내창은 중앙대 안성캠퍼스 총학생회장이었다. 다른 대학을 다니다 군복무를 마치고 나이 들어 조소과에 입학한 그는 수업에도 학생운동에도 열성을 보여 신망이 두터웠다고 한다. 주변의 추대로 총학생회장 선거에 입후보, 88년 겨울 당선됐다. 8월 14일 저녁, 그는 다음 날 예정된 ‘민족해방절(NL계열은 광복절을 그리 부르곤 했다)’ 행사 기획회의를 끝낸 뒤 중요한 약속이 있다며 자리를 떴다고 한다. 그리고 다음 날 거문도 유림해수욕장 해변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시신에는 구타로 생긴 듯한 멍과 상처들이 있었고, 상의는 벗겨져 근처에 버려져 있었다. 경찰은 단순 익사(실족사 혹은 자살)로 결론지었다.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당일 거문도행 여객선 승선 선고서에 ‘도연주’라는 당시 안기부 직원의 이름이 이내창의 필적으로 나란히 기재돼 있고, 다수의 외지 남성이 동승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하지만 안기부가 도연주의 행적 등이 기록된 내부 문건의 공개를 거부하면서 위원회는 진상을 밝히는 데 실패, 2004년 6월 ‘진상규명 불능’판정을 내리고 활동을 접었다. 박창수(전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 이철규(조선대 교지편집장)의 죽음이 그의 죽음과 함께 그렇게 다시 덮였다.
2005년 말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에 따라 독립기구로 가동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의 경우, 유족이 거부해 ‘종합보고서’에서 아들의 이름을 뺐다. 수사권 부재 등 조사 권한의 한계가 명확한 ‘지금 그들’이 아니라 ‘다음’ 세대에게 진실 규명을 맡기겠다는, 기다리겠다는 의미였다고 한다.
광주 망월동 묘역에 묻혔던 이내창은 25주기인 2014년 8월 15일 경기 이천 민주화운동기념공원으로 이장됐다. 최윤필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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