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들 “단속만 피하자”
전력사용 많은 오후 2~5시 단속
해당 시간대만 문 닫아놓고 영업
“사정 설명하면 과태료 부과 안해
산업용 전기 놔둔 채…” 하소연도
전력사용 감축 효과도 불분명
산업부 “전력 수급 최선책” 불구
개문 단속을 통해 아낄 수 있는
전력 사용량 수치는 공개 안 해
업계는 “기여도 크지 않다” 분석
서울의 낮 최고 기온이 36도까지 치솟은 12일 점심시간. 중국인관광객을 비롯해 오가는 사람들을 향해 호객 행위를 하던 명동 거리의 화장품 가게들이 별안간 문을 닫기 시작했다. 서울 중구청 ‘개문(開門)냉방’ 단속반이 막 들이닥칠 참이었기 때문이다. 불과 이틀 전만 해도 10곳 중 7,8곳이 문을 활짝 열고 영업하던 풍경과는 대조적이었다. 과태료를 불사하고 출입문을 개방한 가게는 이날 개점한 한 곳뿐이었다. 매장 매니저 정모(29)씨는 “손님이 많다는 걸 보여주려면 문을 열어둘 수밖에 없다”며 “지금은 단속이 막 시작된 단계이므로 단속 강도를 지켜보다 과태료를 물게 되면 출입문을 닫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계속된 폭염으로 냉방전력 수요가 급증하고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에 대한 비판 여론이 커지자 정부가 개문냉방 단속 대책을 내놨다. 가정뿐 아니라 상업용 전기사용량을 줄여 전력 수요를 낮추려는 의도지만 단속은 시늉에 그치고 전력난 완화 효과도 적어 ‘무늬만 절전대책’이라는 지적이 무성하다.
올해 들어 개문냉방 근절 캠페인만 벌여 온 전력 당국은 전기사용량이 폭증하자 지난 11일부터 단속 및 과태료 부과에 들어갔다. 냉방 중 문을 열고 영업하다 적발된 상업시설은 처음에 경고조치를 받지만 이후 추가 적발 횟수에 따라 50만원, 100만원, 200만원, 300만원 등으로 과태료가 배가된다.
정부의 단속 강화 방침은 최근 가정용 전기에만 부과되는 누진제 논란과 무관치 않다. 한 여름 집에서 에어컨을 틀었다가 자칫 전기세 폭탄을 맞게 된다는 지적에 누진제 개편 논의가 불거지면서 상업용 전기사용에도 제재를 가하겠다는 취지다. 실제 상점들은 누진제 걱정 없이 전기를 맘껏 써왔다고 털어놨다. 서울 강남역 인근의 한 의류가게 매니저 오모(27)씨는 14일 “누진제가 적용되지 않다 보니 종일 에어컨을 켜고 손님을 불러 모아도 전기료 부담이 크지 않다”고 말했다.
상점들이 개문냉방을 선호하는 보다 큰 이유는 매출에 기여하는 바가 막대해서다. 강남역의 한 브랜드신발 매장 점주인 박모(31)씨는 “문을 닫아두면 손님 유입량이 30% 가까이 차이가 나 손실이 이만저만 아니다”고 토로했다. 매장 안에 자리가 없는 대신 출입문을 열어둔 채 포장 손님을 받는 테이크아웃 상점들은 더 울상이다. 프랜차이즈 음료전문점을 운영하는 임모(46)씨는 “정부가 전력수요 급증의 주범인 공장 등 산업용 전기는 놔둔 채 가정용과 형평성을 맞추겠다는 이유로 애먼 영세 사업자들만 잡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업주들 사이에는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서울 홍익대 인근에서 액세서리 판매점을 운영하는 김모(34)씨는 “단속 시간이 정해져 있는 만큼 해당 시간대에는 문을 닫아놓지만 단속반이 지나가면 문을 열고 에어컨 온도도 낮춘다”며 “지난해에도 사정을 설명하면 주의를 줄 뿐 과태료는 물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전력사용 피크 시간대인 오후 2~5시 단속의 눈만 피하면 여전히 개문냉방을 하는 배짱 영업이 판치고 있는 셈이다.
개문냉방 규제에 따른 전력사용 감축 효과도 불분명해 단속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문을 열어놓고 에어컨을 가동할 시 전력이 3,4배 더 소비된다고 보고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냉방을 아예 하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라 냉방을 하되 문을 닫는 것이 전력수급 안정을 위한 최선의 조치”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그러나 개문 단속을 통해 아낄 수 있는 전력 사용량 수치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다만 지난해 전력사용 구성비를 보면 광업, 제조업 등 산업용 전기 비중(56.6%)이 주택(13.6%) 및 일반 상업시설(21.4%)보다 월등히 높아 냉방 규제의 기여도가 생각만큼 크지 않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이상훈 에너지시민연대 공동정책위원장은“개문냉방 단속이 전력예비율 관리에 다소 숨통을 터주고 사업자들이 전기 절약을 생활하는 데 도움은 된다”면서도 “누진제 등 수십년간 누적돼 온 에너지 불평등 현상은 외면한 채 단속과 계도를 통해 전력난을 완화하겠다는 정부의 발상은 보여주기 행정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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