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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35평 땅에 키운 ‘남매 부부의 꿈’

입력
2016.08.15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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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脫)아파트 시대다. 획일적인 공간은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고 투자자본으로서의 가치도 신통치 않다는 게 중론이다. 두 채의 집이 나란히 붙은 땅콩집이 열풍을 일으켰던 2011년은 단독주택에 대한 욕망이 수면 위로 올라온 원년으로 기억될 것이다. “아파트 전세금 낼 돈이면 내 집을 지을 수 있다”는 말에 열광한 이들의 욕망은 명백하다. 취향을 반영한 공간, 숨통을 틔워줄 작은 마당, 무엇보다 땅에 발 딛고 사는 삶.

그러나 주택의 역사가 곧 밀집의 역사인 이 작은 땅에서, 모든 이가 내 집을 갖는 것은 꿈일 수 밖에 없다. 서현 한양대 건축학부 교수는 “단독주택은 아파트의 대안이 될 수 없고 돼서도 안 된다”고 말한다. “좁은 면적의 고밀도시가 갖는 의미는 자원의 이용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동에 드는 연료부터 차지하고 앉은 대지까지, 모여 살수록 지구에 도움이 되는 건 당연한 일이죠. 단독주택 열풍에는 38억년 지구 역사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지표면의 면적이 최대로 넓어진 상황도 고려돼야 합니다.” ‘아파트 대신 단독주택’이 슬로건이 되는 상황의 위험성이 여기에 있다. 내 집 짓기는 돈의 문제를 넘어 윤리의 문제, 개인의 문제를 넘어 도시의 문제로 논의될 필요가 있다.

격주 월요일 10회에 걸쳐 연재하는 건축 기사 ‘동가(家)이몽’은 최근 지어지는 주택들 중 같이 사는 집에 주목한다. 자매 혹은 친구가 나란히 지은 듀플렉스 하우스, 장인 장모 시부모 처남까지 대가족이 모여 사는 다가구 주택, 낯 모르는 이들이 육아나 취미활동을 함께 하기 위해 지은 다세대 주택. 부족한 땅과 적은 예산의 한계를 ‘같이’ 라는 이름으로 돌파한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것이다.

이는 동시에 건축계의 가장 뜨거운 화두인 ‘공유’가 어떤 방식으로 변화하고 발전하는지 살펴 보는 일도 될 것이다. 땅콩집은 재산권 행사의 어려움, 사생활 침해 등 여러 한계로 주택시장의 대세가 되진 못했지만, 누구나 내 집을 지을 수 있다는 강렬한 깨달음을 남겼고 이 각성은 다양한 형태로 진화해 우리 주변에 출몰하고 있다. 지금, 여기, 같이 사는 집들에 대하여.

남매 부부가 함께 지은 연희동 사이당. 겉으로 보기엔 한 채의 집 같지만 내부는 두 채의 집이 나란히 맞붙은 형태다. 이우건축 제공
남매 부부가 함께 지은 연희동 사이당. 겉으로 보기엔 한 채의 집 같지만 내부는 두 채의 집이 나란히 맞붙은 형태다. 이우건축 제공

오래된 집들이 촘촘히 붙어 선 서울 연희동 주택가에 흰색벽의 단정한 집 한 채가 들어섰다. 겉에서 볼 땐 한 채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작은 집 두 채가 맞붙은 형태다. 두 집을 연결하는 건 누나와 남동생이다. 누나가 먼저 결혼해 독립하고 뒤이어 남동생이 결혼한 뒤에도 남매의 우애에는 변함이 없었다. 각각 빌라에서 살던 두 쌍의 부부는 돈을 모아 2013년 연희동에 117㎡(35평) 남짓의 땅을 샀다. 일반적으론 한 가구가 살 집 짓기에도 빠듯한 크기였지만 그럼에도 건축가를 찾아 갔다. 조장희 건축가(제이와이아키텍츠)를 만났을 때 가장 먼저 한 질문은 “여기서 두 가구가 살 수 있어요?”였다.

35평짜리 땅에 들어선 두 채의 집

왼쪽이 누나 부부의 거실, 오른쪽이 동생 부부의 거실. 취향도 삶의 방식도 조금씩 다른 부부가 각자의 취향에 맞게 꾸몄다. 서재훈 기자ㆍ이우건축 제공
왼쪽이 누나 부부의 거실, 오른쪽이 동생 부부의 거실. 취향도 삶의 방식도 조금씩 다른 부부가 각자의 취향에 맞게 꾸몄다. 서재훈 기자ㆍ이우건축 제공

두 채의 집이 붙어있는 듀플렉스 하우스는 현재 판교나 동탄 등 경기 일대의 잘 정비된 택지지구에 주로 들어선다. 필지가 들쑥날쑥한 데다 조망도 좋지 않은 서울에선 흔히 볼 수 있는 형태는 아니다. 그러나 30대 초반에서 40대 초반, 각자의 직장에서 왕성하게 일할 나이의 건축주들은 서울 밖으로 나갈 마음이 없었다. 굳이 주택이 빽빽하게 밀집된 연희동 골목을 택한 것은 “아직 마을 냄새가 남아 있어서”다. “가격보다는 얼마나 오래 살 수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봤어요. 이 동네는 높이제한 때문에 다세대ㆍ다가구 주택이 들어오기 힘들거든요. 오래된 주택과 상점들이 만드는 마을 특유의 편안함이 있으니까요.”

그러나 집 두 채가 나란히 들어가기엔 땅 크기가 넉넉한 편이 아니었다. 인접대지로부터 이격거리를 둬야 하는 규정에 따라 1m 가량을 들이고 여기서 또 주차장 자리를 떼고 나니 집에 쓸 수 있는 면적은 58.33㎡(18평) 남짓. 건축가는 58.33㎡를 반으로 나눈 뒤, 부족한 면적을 확보하기 위해 집을 2층으로 올리고 여기에 지하층과 다락을 추가했다. 1층은 주방과 거실, 2층은 침실, 지하층과 다락은 수납용도로 사용하는 것은 여느 협소주택과 동일하다. 문제는 동서로 긴 직사각형의 땅을 어떻게 나눌까였다. 서쪽은 도로에 접해 어느 정도 개방감이 있는 반면, 동쪽은 이웃집이 거의 손에 닿을 거리로 붙어 있어 창문 열기도 조심스러운 환경이었다.

“길이를 따라 나눌 경우 길다란 두 채의 집이 나오죠. 그러면 조망은 평등해지지만 이게 살기에 좋은 집일까란 의문이 들었어요. 도로에서 볼 때도 집이 가운데가 딱 잘려 있는 게 보기 좋진 않거든요. 무조건 평등을 찾기보다 서로가 가진 장점을 적절히 활용하는 게 좋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동쪽집 옥상에 올라가 바라본 동네 전경. 오르막 지형이라 마을 전체가 내려다 보인다. 평지붕 위엔 나무 데크를 깔아 마당처럼 사용할 수 있게 했다. 황효철 제공
동쪽집 옥상에 올라가 바라본 동네 전경. 오르막 지형이라 마을 전체가 내려다 보인다. 평지붕 위엔 나무 데크를 깔아 마당처럼 사용할 수 있게 했다. 황효철 제공

조망은 위로 올라가면 반전을 이룬다. 오르막 지형으로 인해 동쪽 옥상에 서면 동네 전체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반면, 서쪽엔 야산에 가까운 궁동공원이 시야를 가려 탁 트인 느낌은 없다. 양쪽의 조망이 전혀 다른 상황. 단점보단 장점에 집중해, 골목길을 내다볼 수 있는 쪽엔 누나 부부의 집이, 시원하게 트인 테라스가 있는 쪽엔 동생 부부의 집이 들어섰다.

단독주택의 꿈 마당, 옥상에서 찾다

단면도를 보면 두 집이 쌍둥이처럼 보이지만 내부는 미묘하게 다르다. 생활 방식도, 앞으로의 계획도 다른 두 부부의 삶을 반영한 것이다. 동생 부부는 침실을 줄이고 작은 방을 넓힌 반면, 누나 부부는 침실을 좀더 널찍하게 만들고 작은방엔 재봉틀을 놓아 취미실로 쓴다. 영화 보는 걸 즐기는 동생 부부는 침실에 레일로 이동하는 하얀 가벽을 설치해 간이 드레스룸 겸 빔프로젝터를 쏘는 벽으로 활용한다. 반면 누나 부부는 침실엔 계절 옷만 단출하게 놓고 지하층에 제대로 된 드레스룸을 꾸몄다.

동생 부부집의 1층 거실(왼쪽)과 지하층. 지하층은 지상에서 1m 높인 뒤 창문을 내 채광과 환기를 해결했다. 동생 부부는 서재로 쓰고 있다. 이우건축 제공
동생 부부집의 1층 거실(왼쪽)과 지하층. 지하층은 지상에서 1m 높인 뒤 창문을 내 채광과 환기를 해결했다. 동생 부부는 서재로 쓰고 있다. 이우건축 제공
누나 부부집의 2층 침실(왼쪽)과 지하층. 침실엔 계절 옷만 두고 지하층에 제대로 된 드레스룸을 꾸몄다. 서재훈 기자
누나 부부집의 2층 침실(왼쪽)과 지하층. 침실엔 계절 옷만 두고 지하층에 제대로 된 드레스룸을 꾸몄다. 서재훈 기자

다락층을 제외하면 한 집 당 쓸 수 있는 총 면적은 약 79㎡(24평)다. 작은 편은 아니지만 건축가는 또 다른 공간을 기획했다. 단독주택에 사는 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공간, 마당이다. 그러나 차 두 대를 세우면 꽉 차는 지상에 마당은 언감생심. 있더라도 옆 집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건축가는 위로 눈을 돌려 지붕을 평평하게 만들고 여기에 나무 데크를 깔았다. 다락에 난 문을 통해 바깥으로 나가면 테라스처럼 사용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이 나오고, 여기서 계단을 몇 개 더 올라가면 널따란 평지붕이 나타나는 구조다. 양쪽 집이 만날 수 있는 공용공간이자, 조밀한 주택가에서 남의 시선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자유로운 외부공간이다.

옥상 난간에 낸 창으로 마을 전경이 그림처럼 들어온다. 기능으로만 활용되는 난간의 높이를 2.5m로 높여 조형적으로도 의미를 부여했다. 이우건축 제공
옥상 난간에 낸 창으로 마을 전경이 그림처럼 들어온다. 기능으로만 활용되는 난간의 높이를 2.5m로 높여 조형적으로도 의미를 부여했다. 이우건축 제공

옥상에 2.5m 높이로 둘러진 철제 난간은 평범해 보이는 집의 외관에 약간의 장난기를 더한다. 평균보다 훌쩍 높은 난간은 그 안에 어린이나 동물처럼 예측불허의 생물이 있을 것 같은 호기심을 일으키고 이는 건물의 생동감으로 이어진다. 건축가는 난간에 창을 내 주변의 근사한 풍경들을 담았다. “안전 문제 때문에 난간을 높인 것도 있지만 건물의 비례감을 위해서이기도 해요. 여기에 창을 내서 난간이 건물로부터 연장되는 듯한 느낌을 줬습니다.” 다락에는 깊은 서랍장을 짜 넣어 철 지난 물건들을 수납하게 하고, 바닥엔 전기패널로 난방을 해 겨울에도 따뜻하게 쓸 수 있게 했다. 층별로 온도 차이가 큰 집의 특성 상 여름철엔 지하층이, 겨울철엔 다락이 인기라고 한다.

성인의 앉은 키와 딱 맞는 다락. 전기패널로 난방을 해 겨울에도 따뜻하다. 왼쪽 창을 열고 나가면 작은 베란다와 옥상 마당으로 연결된다. 황효철 제공
성인의 앉은 키와 딱 맞는 다락. 전기패널로 난방을 해 겨울에도 따뜻하다. 왼쪽 창을 열고 나가면 작은 베란다와 옥상 마당으로 연결된다. 황효철 제공

듀플렉스 하우스는 땅콩집 때문에 여러 세대가 함께 사는 집 중 가장 많이 알려진 유형이다. 이 집도 땅콩집의 일종으로, 목조구조인 땅콩집이 벽간 소음으로 인한 갈등이 많았던 반면 콘크리트 구조로 이를 해결했다. 연희동 땅콩집 이전에도 동탄과 판교 등지에 듀플렉스 하우스를 설계한 조장희 건축가는 “모든 사람이 만족하며 살 수 있는 주거 형태는 아니다”며 선택에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 한국 사회 시스템 상 모여 산다는 건 여러모로 훨씬 더 효율적입니다. 듀플렉스 하우스는 코하우징이나 쉐어하우스와는 또 개념이 달라서 공동체적 삶보다는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 사람들이 많이 택하는 유형입니다. 비용 분담에 있어서는 분명히 강점이 있지만 현대인들은 모여 사는 것에 생각보다 훨씬 익숙지 않다는 걸 고려할 필요가 있어요. 앞으로 듀플렉스 하우스가 더 늘어난다면 가족 중심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사이당 단면도. 제이와이아키텍츠 제공
사이당 단면도. 제이와이아키텍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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