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재부 “경상성장률 부양 정책 따로 없다”
전문가 “정책 신뢰성 떨어뜨려
“한은에 우회적 금리 압박” 지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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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성장률 병행 관리는 경제를 확대 균형적으로 끌고 나가려는 것.”(지난해 12월16일 최경환 당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경상성장률을 높이는 정책이 따로 있지는 않다.”(지난 2일 최상목 기재부 1차관)
정부가 당초 올해 경제정책에서 중요하게 관리하겠다고 밝혔던 경상성장률이 불과 반 년여 만에 정책 우선순위에서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실질성장 못지 않게 물가상승세까지 병행 관리해 경제의 외형적 성장도 높이겠다는 취지였지만, 0%대 초저물가 기조가 지속되자 사실상 두 손을 들어버린 형국이다. 애초 정부가 하기 어려운 일(물가부양)임에도, 한국은행을 압박할 카드로 경상성장률을 이용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14일 정부에 따르면 기재부는 작년 말 발표한 ‘2016년 경제정책방향’에서 올해 경상성장률 목표치를 4.5%로 제시하며 대대적인 정책 홍보에 나섰다. 당시 최경환 전 부총리는 “국민이 경기회복을 체감하려면 적어도 6%대의 경상성장률은 유지해야 한다”며 “향후 경제정책의 초점을 실질성장률에서 경상성장률로 이동시키겠다”고까지 공언했다.
실질성장률에 물가상승률을 더한 것이 경상성장률이기 때문에, 경상성장률을 높이겠다는 말은 상당 수준의 물가 상승을 용인하겠다는 얘기와 같았다. 이에 따라 시장은 “정부가 경제정책의 패러다임을 그간의 ‘물가 잡기‘에서 ‘물가 띄우기’로 전환했다”며 일제히 주목하기도 했다.
정부의 이런 방향선회는 저물가로 인한 디플레이션(물가가 하락하고 전반적으로 경제가 침체하는 현상)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일본의 장기침체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위기의식에서 비롯됐다. 실제 일본은 1990년대 초 부동산 거품이 터진 뒤 적정 수준의 물가 관리에 실패해, 1980년대 평균 6.0%였던 경상성장률이 1990년대 2.0%로 추락했고, 2000~2010년엔 평균 -0.7%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기재부는 지난 6월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서 올해 경상성장률 목표를 4.0%로 대폭 낮추며 사실상 ‘관리 포기’를 선언하고 말았다. 이는 올 들어 월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네 번이나 0%대에 머무를 만큼 정부의 경상성장률 관리 대책이 무색한 현실 때문이기도 하다.
기재부는 변명에 급급하다. 한 관계자는 “경상성장률을 강조한 건 경제정책에서 적정한 물가수준도 감안해야 한다는 인식의 변화를 반영한 것이었을 뿐, 경상성장률을 올리는 방안이 따로 있다는 얘기는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그는 또 “사실 물가의 목표관리 책임은 통화정책을 하는 쪽에서 우선적으로 가진다”라며 비판의 화살을 한은으로 돌리기도 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애초 정부가 능력 밖의 일을 대책으로 내놓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는 “경상성장률이란 아이디어를 위한 아이디어에 불과했다”며 “타이틀만 번지르르하고 나중에 나몰라라 하니 정책의 신뢰가 떨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식 연세대 교수는 “물가대책은 한은의 영역인데 한은에 직접적으로 금리를 내리라고 하기 어려우니, 이렇게 경상성장률 관리라는 것으로 돌려 말한 셈”이라고 지적했다.
세종=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경상성장률은
실질성장률과 국내총생산(GDP) 디플레이터(종합물가지수)의 합산으로 이뤄지며 세수 추계와 예산안 편성의 기초가 된다. 다른 말로 명목성장률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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