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한국시간) 한국 대표팀이 전 종목을 석권하며 막을 내린 올림픽 양궁 경기가 열렸던 리우데자네이루 삼보드로무 경기장. 한국 선수ㆍ코치진은 모두 함께 어우러져 축제를 벌였고, 선수단은 정의선(46) 대한양궁협회장을 헹가래 쳤다. 남자 개인전 금메달로 피날레를 장식한 구본찬(23ㆍ현대제철)은 자신의 금메달을 정 회장의 목에 걸어줬다. 다른 종목에서는 보기 드문 협회장과 선수의 스킨십이다.
한국 양궁의 올림픽 신화는 현대자동차그룹의 전폭적인 지원이 뒷받침된 결과다. 정몽구(78) 현대차그룹 회장과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부자의 32년 양궁 후원은 ‘지원은 충분히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 모범 사례로 꾸준히 회자되고 있다. 현대차그룹과 양궁의 인연은 정몽구 회장이 현대정공(현대모비스) 사장이던 1984년 LA올림픽 양궁 여자 개인전에서 서향순의 첫 금메달을 지켜본 것이 계기가 됐다. 이듬해 양궁협회장에 취임한 정 회장은 현대정공에 여자 양궁단, 현대제철에 남자 양궁단을 만들었다. 정 회장은 1985~1997년 양궁협회장을 역임했고, 1997년부터 명예회장직을 맡아 32년간 양궁의 저변 확대, 인재 발굴, 첨단 장비 개발 등에 450억원 이상을 투자했다. 특히 정 회장은 체육단체 최초로 스포츠 과학화를 추진해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을 꾀했고, 양궁 장비를 직접 개발하도록 독려해 세계 최고 수준의 장비를 갖추도록 했다. 정 회장은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미국 출장 중 따로 시간을 내 심장박동수 측정기, 시력테스트기 등을 직접 구입해 양궁협회에 선물했다. 또 현대정공에선 레이저를 활용한 연습용 활을 제작해 양궁 선수단에 제공했다. 선수들의 집중력 강화에 혁혁한 성과를 낸 야구장 소음 훈련도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을 앞두고 새 경기방식이 도입됐을 때 내놓은 정 회장의 아이디어로 시작됐다.
정 회장의 양궁 사랑은 2005년부터 양궁협회장을 맡고 있는 아들 정의선 부회장에게 대물림됐다. 정 부회장은 ‘한국양궁 활성화 방안’을 연구하도록 지시해 양궁 꿈나무의 체계적인 육성과 지원, 공정하고 투명한 국가대표 선발 시스템 구축에 힘썼다. 그 결과 양궁은 파벌 싸움이나 입시 비리 등의 잡음 없이 세계 정상을 유지하고 있다.
이번 올림픽을 앞두고 현대기아차 연구개발센터는 ▲활 비파괴검사 ▲맞춤형 그립 ▲슈팅 머신 ▲뇌파측정 훈련 등 4개 분야에서 선수들에게 기술지원을 했다. 정 회장은 대표단 출국 전날 태릉선수촌을 방문해 선수들과 저녁을 함께하며 격려했고, 리우 현지를 방문해 직접 선수들을 응원했다. 선수들을 위해 물리치료실, 샤워실 등이 갖춰진 트레일러 휴게실을 준비했고, 현지 치안 문제를 고려해 사설 경호원와 투싼, 맥스크루즈 방탄차 등을 제공했다.
화끈한 포상도 뒤따랐다. 1986년 아시안게임 1억7,000만원, 2004년 아테네 올림픽 4억원, 2008년 베이징 올림픽 6억5,000만원, 2012년 런던 올림픽 16억원,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8억8,000만원 등 주요 국제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선수단, 코치진에 총 60억여원을 지급했다.
정 회장은 “나는 뒤에서 돕는 입장이었고, 선수와 감독 코치진들의 고생이 정말 많았다”며 “선수들이 자발적으로 꼭 해야 한다는 목표를 갖고 달려온 데 대해 너무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도 양궁을 지원할 계획인지 묻자 “당연하다”고 잘라 말했다.
성환희기자 hhsung@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