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이랑의 기적’은 없었다. ‘브라질 축구의 성지’ 마라카낭 경기장에서 개최국 브라질과 한 판 붙어보겠다는 꿈도 물거품이 됐다. 손흥민(24ㆍ토트넘)은 그라운드에 주저앉아 펑펑 눈물을 흘렸지만 패배를 되돌릴 수는 없었다.
한국 대표팀은 14일(한국시간) 브라질 벨루오리존치의 미네이랑 스타디움에서 열린 올림픽 남자 축구 온두라스와의 8강전에서 0-1로 졌다. 경기는 한국이 완전히 지배했지만 역습 한 방에 무너졌다. 볼 점유율은 한국 64%, 온두라스 36%였다. 슈팅도 한국 16개(유효슈팅 7개), 온두라스 6개(유효슈팅 4개)로 훨씬 많았다. 하지만 후반 14분 딱 한 차례의 상대 역습을 막지 못했다. 손흥민이 공을 뺏겼고 온두라스의 로멜 키오토(25)가 수십 미터를 단독 드리블해 패스한 볼을 엘리스 알베스(20)가 마무리했다. 이후 ‘침대축구’를 구사한 온두라스 골문은 끝내 열리지 않았다. 종료 휘슬이 울리자 한국 선수들은 모두 쓰러진 반면 조금 전까지 걸핏하면 누워서 고통을 호소하던 온두라스 선수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펄쩍 펄쩍 뛰며 환호했다. 온두라스는 브라질과 4강전에서 맞붙는다. 브라질은 8강전에서 네이마르(24)의 프리킥 결승골에 힘입어 콜롬비아를 2-0으로 꺾었다.
핀토 감독을 넘지 못하다
“결국 핀토 감독에게 당한 겁니다.”
현장에서 경기를 지켜본 이영표 KBS 축구해설위원이 말했다. 호세 루이스 핀토(64) 온두라스 감독은 역습의 대가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 때도 같은 전략으로 코스타리카를 8강으로 이끌었다. 온두라스 역시 2년 전 코스타리카와 판박이였다. 이영표 위원은 “저런 역습은 단단한 조직력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한국 선수들은 온두라스 미드필더와 수비진 사이에 계속 볼을 투입시키며 수비의 균형을 깼다. 하지만 결정력 부족이 발목을 잡았다. 손흥민과 권창훈(22ㆍ수원)이 3~4번 완벽한 기회를 잡았지만 번번이 상대 골키퍼 로페즈 루이스(23) 손에 걸렸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온두라스 골키퍼가 한국을 궁지로 몰아넣었다”고 평가했다.
상대 역습에 허를 찔린 수비는 두고두고 아쉽다. 본보 축구해설위원인 설기현 성균관대 감독은 “공격을 하면서도 늘 역습 대비책을 세워놨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리드를 잡은 온두라스 선수들은 신체 접촉이 거의 없는데도 걸핏하면 쓰러졌다. 종료 직전 엘리스는 아예 드러누워 일어날 생각을 안 했다. 하지만 침대축구 탓만 할 수는 없었다. 이를 응징할 ‘한방’이 부족했다. 설 감독은 “밀집수비를 벗겨내고 많은 찬스를 만든 점은 높게 평가한다”면서도 “마지막 득점은 감독이 해줄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 공격수가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신태용 감독 역시 “축구를 하다 보면 다칠 수도 있고 그런 부분을 이용해 시간을 끌 수도 있다”며 ‘침대축구’를 패인으로 돌리진 않았다.
다만 추가시간이 짧았던 건 아쉽다. 엘리스가 그라운드에 드러 누워 허비한 시간만 3분이 훨씬 넘었는데도 이집트 주심은 공식 추가시간을 3분만 줬고 3분50초쯤 경기를 끝냈다. 손흥민이 득달같이 심판에게 달려가 항의했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이 위원도 “3분은 황당했다”고 말했다. 신 감독도 “6분은 줬어야 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심의 재량으로 주는 추가시간이 한으로 남았다.
미네이랑의 눈물
그라운드와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은 침통했다.
손흥민은 “너무 아쉬워서 조금이라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싶어서 심판에게 항의했다”며 울먹였다. 수비수 정승현(22ㆍ울산)도 “지금까지 정말 열심히 준비했는데…”라며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와일드카드(23세 초과)로 뽑힌 주장 장현수(25ㆍ광저우)는 “동생들이 정말 잘 따라와 줬는데 우리가 노력한 만큼 결과를 얻지 못했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올림픽 대표팀은 벨루오리존치에서 하루를 머문 뒤 16일 출발해 17일 귀국 후 바로 해산한다. 유럽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은 브라질에서 곧바로 소속 팀으로 복귀한다.
벨루오리존치=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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