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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언론이 담합(談合)을 생각할 때

입력
2016.08.12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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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당 대통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가 9일 윌밍턴의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에서 유세하고 있다. 노스캐롤라이나=AP 연합뉴스
공화당 대통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가 9일 윌밍턴의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에서 유세하고 있다. 노스캐롤라이나=AP 연합뉴스

현장을 가지 않고 기사를 작성하다 보면 가끔씩 오보를 날릴 때가 있다. 4일자 ‘트럼프 몰락으로 치닫나’는 제목의 기사가 대표적인 경우다. 트럼프가 버지니아 주 애슈번 유세 도중 우는 아기를 쫓아내는 옹졸함을 보였다고 소개한 기사였는데 현지 신문을 보고 쓰는 바람에 결과적으로 오보가 되고 말았다.

워싱턴포스트에 나온 기사를 보고 기자가 작성한 기사의 골자는 이렇다. ‘트럼프는 이날 유세 도중 아기가 울자, 처음에는 “애들은 원래 그렇다”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그러나 불과 55초 뒤에 “괜찮다는 말을 엄마가 정말 믿는 모양”이라며 나가 줄 것을 요구했다. 순간 청중 사이에 어색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러나 나중에 확인한 워싱턴포스트 기사는 사실과 달랐고 이를 토대로 작성한 기자의 기사도 결과적으로 오보가 되고 말았다. 트럼프가 먼저 아기 엄마에게 ‘나가라’고 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엄마와 현장에 있던 캐나다 기자에 따르면 우는 아이를 달래려고 엄마가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본 뒤 “애를 달래러 나가도 된다”고 말했다. 또 ‘공갈 젖꼭지’를 물려 울음을 멈추게 한 엄마는 아기와 함께 돌아와 트럼프 연설을 계속 들었다.

트럼프만 포착한 당시 동영상으로는 객석 상황을 알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워싱턴포스트는 전체 맥락에 대한 고려 없이 트럼프가 옹졸하다고 몰아붙인 셈이 됐다. 워싱턴포스트를 인용했던 기자도 마찬가지 잘못을 한 것이다.

이쯤 되면 ‘미국 주류언론이 편파적이다’라는 트럼프 캠프와 지지자들의 주장이 영 틀린 것만도 아니다. 실제로 뉴욕타임스나 워싱턴포스트 등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주저 앉혀야 한다’는 식으로 트럼프에 맹공을 가하고 있다. 트럼프의 여자문제, 두 아들 돈 주니어ㆍ에릭의 사냥 여행, 장녀 이반카 회사의 부실한 노무관리 등 비판적 기사를 잇따라 내보낸다. 반면 힐러리 클린턴에 대해서는 칼날이 훨씬 무뎌 보인다.

미국 주류언론은 왜 이럴까. 한 관계자는 “미국에 해가 되는 인물이라는 공감대를 기반으로 조직적인 ‘트럼프 때리기’가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좋게 말하면 미국을 바로잡기 위한 공조, 나쁘게 말하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주류 언론의 담합이라는 얘기다.

미 언론의 이런 행태는 새롭지 않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지난달 ‘댈러스 순직 경관 장례식 무도 소동’때도 그랬다. 당시 그는 흑인 총격으로 숨진 백인 경관 5명의 장례식에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함께 참석했다. 인종충돌로 번지는 걸 막기 위한 전ㆍ현직 백ㆍ흑인 대통령의 화합이라는 측면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문제는 부시 전 대통령이 춤추듯 손을 흔들며 찬송가를 부른 것이다. SNS를 통해 영상이 전파됐고, 자기 나라 일이 아닌 영국 언론들은 부시를 조롱했다. 그러나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스 등은 거의 다루지 않았다. 모처럼 조성된 화합 분위기를 깨서는 안 된다는 대국적 판단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한국 언론도 비슷한 공조를 한 기억이 있다. 일본 시마네현이 매년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우기는 행사를 몇 년 전부터 자체 보이콧한 것이 대표적이다. 화난 독자들을 대신해 그 행사에 취재진을 파견해 경쟁적으로 비판할수록 오히려 그들의 기를 살려주는 부작용을 막기 위한 무시 전략을 편 것이다.

한국에서는 여전히 ‘고(高)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가 논란이다. 특히 중국 정부와 중국 언론의 집요한 ‘한국 흔들기’가 집중 조명되고 있다. 지레짐작으로 중국의 보복 시나리오를 예상하는 보도까지 나온다. 얼굴깨나 알려진 것 빼고는 전문지식 없는 인물들이 나서 제 생각대로 말을 거들면서 갈등은 더욱 확대되고 있다. 내부 논란만 부추기는 일은 차라리 모르는 척 하는 게 나을 수 있다. 발등에 불 떨어진 성주군민 사연이야 어쩔 수 없다면, 중국 사람들의 사드 얘기는 올림픽 기간 중에라도 귀를 닫아 보는 게 어떨까.

조철환ㆍ워싱턴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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