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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약물 남용

입력
2016.08.1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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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약은 독이다. 사용량이 문제일 뿐 독성이 없는 약은 없다”(약물학의 아버지 파라셀수스). “약의 장기 복용은 면역력을 떨어뜨려 새로운 병을 만든다”(면역학자 아보 도오루). 선현들은 오래 전부터 약물 남용을 경계해 왔다. 그래도 현대인에겐 약이 질병을 위무하는 달콤한 사탕이다. 현대의학이 약물요법에 과다 의존하면서 평생 약을 먹는 환자가 늘고 있다. 약물 의존도가 지나치면 자연치유력이 망가진다. 최근 간염, 알레르기질환 등의 급증은 약물 남용으로 면역기능이 이상을 일으켰기 때문이라는 게 학자들의 분석이다.

▦ 미국에선 한해 평균 10만명이 약물 부작용으로 사망한다. 임의 복용에 따른 약화사고를 제외하고 의사 처방에 따라 제대로 약을 복용한 경우만 해도 그렇다. 이는 교통사고 사망자보다 많은 숫자로 전체 사망원인 4위에 해당한다. 한국인의 약물 남용은 더욱 심각하다. 최근 5년간 보고된 약물 부작용 사례는 총 50만 건. 항생제의 경우 하루 사용량이 인구 1,000명당 31.7명으로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 평균보다 34%나 많다. 그 결과 슈퍼박테리아와 같은 내성균이 등장해 항생제가 무용지물이 될 날이 머지않았다.

▦ 과잉 처방과 약물 남용 덕분에 제약업계는 고성장을 구가 중이다. 국내 의약품 시장 규모는 연간 14조원, 건강보험 재정에서 약품비 비중은 OECD 최상위인 30%에 육박한다. 제조업 성장률이 떨어지는데도 지난해 상장 제약사의 매출은 전년 대비 17% 늘었고 영업이익(1조 4,500억원)은 55.9% 치솟았다. 제조업 평균보다 훨씬 많은 수익을 내면서도 연구개발비는 다국적 제약사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골치 아픈 신약 개발에 매달리기보다는, 특허 만료된 오리지널약을 베껴 손쉽게 돈 버는 구조다.

▦ 의료 상업주의의 확산은 약물 남용을 부추기는 주원인이다. 의료계는 없는 병도 만들어 약을 먹게 한다. 고혈압 기준을 낮춰 약물 투여군을 2배 이상 늘린 게 대표적이다. 학술세미나처럼 합법을 가장해 뒷돈을 주는 등 리베이트 수법도 날로 교묘해지고 있다. 2시간 강연료로 의사에게 2,800만원을 지급한 사례도 있었다. 리베이트 규모는 연간 2조원에 달한다는 게 공정위 추정이다. 2010년 의사까지 처벌하는 쌍벌제 도입에도 불구하고 리베이트는 근절되지 않고 있다. 명단 공개 등 더욱 엄정한 조치가 요구된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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