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사고 아니야?’
손가락으로 코를 후비는 사람이 버젓이 카메라에 잡힌다. 코를 후비다 코피가 터지자 급하게 휴지로 콧구멍을 막는다. 방송 사고도 같고, 몰래카메라 같기도 한 이 장면은 실제로 올림픽 중계석에서 벌어진 ‘사건’이다.
지상파 방송 3사의 올림픽 중계 방송이 달라졌다. 2016 리우올림픽에서 활약하는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들의 경기 장면뿐만 아니라 생생한 현장감을 담은 ‘깨알’ 영상으로 시청률 경쟁을 벌이고 있다.
SBS는 ‘리액션 캠’이라는 제목으로 3분짜리 영상을 방송하고 있다. 경기장 밖 중계석에 설치된 소형 카메라로 캐스터와 해설위원의 대화나 행동을 고스란히 담은 ‘리액션 캠’은 마치 ‘몰카’를 보듯 적나라한 모습을 전한다. 코피 터지는 장면도 ‘리액션 캠’이 잡아냈다.
지난 7일 방송된 ‘리액션 캠’은 남자 양궁 단체전 결승전을 중계한 배기완 캐스터와 양궁 국가대표 출신 해설위원 박경모 박성현 부부의 입담을 담았다. 한국 선수들이 금메달을 획득하는 순간 세 사람이 흥분해서 말을 더듬거나 기쁨을 감추지 못해 만세를 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전달됐다. 하지만 이런 뻔한 영상만으로 시청자의 흥미를 끌 수 없다.
정작 클로즈업 된 화면은 캐스터와 두 해설위원 뒤에 서서 코를 후비던 음향감독이다. 카메라는 굳이 음향감독의 얼굴을 줌으로 당겨 ‘긴장된 음향감독, 콧구멍 굴착시작!’이란 자막을 내보냈다. 그러다 금메달에 가까워진 한국 선수들의 모습을 볼 때쯤 코피를 흘리는 그의 모습에 ‘코피 출혈 사고발생!’이란 자막을 붙여 웃음을 줬다. 휴지로 콧구멍을 막으면서도 선수들을 응원하는 음향감독에게 ‘대한민국 금맥도 터지고 코피도 퍼진’이라는 ‘섬세한’ 자막을 더해 금메달 확보 순간의 감동을 더욱 진하게 했다.
SBS 관계자는 “중계석의 목소리만 듣는 것보다는 ‘리액션 캠’을 통해 생생한 현장의 분위기를 전하려는 또 다른 시도”라며 “타 방송사와는 다른 SBS만의 차별화 전략”이라고 말했다.
MBC와 KBS는 선수들의 ‘셀카’ 영상과 해설위원들의 ‘패러디’ 영상을 각각 제작해 시청률 잡기에 나섰다. MBC는 리우올림픽에 입성하기 전 국가대표 선수들을 찾아가 ‘셀카’ 홍보를 하도록 했다. 선수 스스로 촬영할 수 있도록 ‘셀카봉’을 제공해 최대한 자연스러운 모습을 포착해냈다. 수 많은 영상 중에 MBC가 내세운 홍보 영상은 올림픽 양궁 2관왕에 오른 장혜진 선수가 찍은 ‘셀카 캠’이다.
MBC는 중계 방송 사이사이에 장 선수의 ‘셀카’ 영상을 방영하며 시선몰이 중이다. “사랑합니다 MBC”라는 장 선수의 언급만으로도 홍보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특히 12일 새벽 여자 양궁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며 2관왕이 된 장 선수이기에 그 효과는 더 커질 전망이다.
최근 일명 ‘호흡곤란’ 해설로 인기를 누리고 있는 펜싱 국가대표 출신 최병철 KBS 해설위원의 패러디 영상도 볼거리다. KBS는 지난 10일 박상영 선수가 출전한 남자 펜싱 개인 에페 결승전을 중계한 최 위원의 해설 하나하나를 자막으로 살려 ‘해설 패러디’ 영상으로 재탄생시켰다. KBS는 “막고우 찔뤄써으!(막고 찔렀어)” “기저귀에요(기적이에요)” 등 최 위원의 발음을 그대로 자막을 삽입한 영상을 자사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과 네이버 TV캐스트에 공개해 큰 반응을 얻고 있다. 이 영상은 공개된 지 하루도 안 돼 조회수가 172만 건에 이르렀고, 12일 오후 기준 네이버 TV캐스트 조회수도 약 70만 건에 다다르고 있다.
KBS의 한 관계자는 “시청자들은 이제 TV뿐 아니라 스마트폰, 인터넷 등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경기 중계 이외에 선수 개개인이나 현장의 목소리에 더 관심을 기울인다”며 “그들의 요구에 맞추기 위한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강은영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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