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폭삭 주저앉고 둘째 여동생은 화상에 온몸이 시커멓게 변했어예. 거리는 시신으로 뒤덮여 생지옥이 따로 없었고…. 한국에만 오면 다 괜찮을 줄 알았습니더.”
일본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 이일갑(77ㆍ경남 합천군)씨가 기억하는 1945년 8월 6일은 참혹했다. 이씨는 “그날은 집을 앗아갔지만 71년이 지난 이제는 내 건강과 자식들, 그리고 손자 건강마저 걱정스럽게 하고 있다”며 “피해는 진행형”이라고 강조했다.
당시 이씨의 부모님은 외출하고 없었다고 한다. 이씨는 “무너진 집 더미 옆에서 셋째 여동생이 무사히 발견됐고 다행히 가족들은 모두 목숨을 건졌다”고 말했다. 이씨는 팔에 화상을 입고 현지에서 간단한 치료를 받았다. 당시 6살이었다.
이씨는 같은 해 11월 가족과 함께 귀국해 부모님의 고향인 경남 합천군으로 왔다. 괜찮은 줄만 알았던 원폭 피해의 고통은 이씨의 성장과 함께 자라났다. 이씨는 “피부가 시커멓게 변하면서 팔이고 다리고 쑤시고 안 아픈 데가 없었다”며 “치료할 때 뿐이지 지나고 나면 다시 아팠다”고 했다. 이씨는 10년 전 심장판막 수술과 디스크 수술을 받았고 최근에는 다리가 퉁퉁 부어 거동이 불편한 상태다.
그럼에도 이씨는 자신의 건강보다 자식들을 더 걱정하고 있다. 이씨는 1960년대 초 결혼해 슬하에 2남 2녀를 뒀는데 이 중 맏이와 막내딸의 건강이 좋지 않다고 했다. 이씨의 맏이 최정식(54)씨는 “피부의 겉과 속이 모두 아프다. 요즘은 2, 3일에 한번씩 병원에 간다”며 “고등학교 때부터 몸에 이상이 있었는데 피부가 아프고 간지럽고 벗겨졌다”고 말했다. 재차 상태를 묻자 최씨는 연신 “아프다. 그냥 아프다”를 반복했다. 최씨는 2005년 세상을 떠난 원폭 2세 피해자 고 김형률(당시 34세)씨와 함께 2002년 원폭 2세 환우회 회원으로 등록하기도 했다.
이씨는 또 손자의 피부병에 마음을 쓰고 있었다. 그는 “손자의 허벅지 피부가 안 좋다. 약을 먹어도 그 때뿐이다. 원폭피해와 관련된 질환이 아니길 바라지만 걱정이 크다”고 토로했다. 이씨는 정부에 원폭 피해자와 2, 3세대 환우에 대한 관심을 호소키도 했다. 이씨는 “아픈 사람이 나아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 나라가 할 일”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합천=정치섭 기자 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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