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와 육군
호사카 마사야스 지음ㆍ정선태 옮김
글항아리 발행ㆍ1,136쪽ㆍ5만4,000원
‘쇼와 육군’은 제목 그대로 일본 저널리스트 호사카 마사카스가 2차대전기 일본 육군의 미치광이 행태를 비판한 1,200여쪽에 이르는 고발서다. 다치바나 다카시, 사노 신이치와 함께 일본의 1세대 논픽션 대표 작가로 꼽히는 이답게 수십 년에 걸친 자료 조사와 관련자 인터뷰 등을 요령껏 정리하면서 스피디한 전개를 선보인다.
1941년 12월 7일 태평양전쟁 결행을 앞두고 전쟁의 중압감을 견디다 못한 도조 히데키가 관저에서 문을 닫아걸고는 홀로 대성통곡했다는 부인의 증언, 1945년 12월 육해군성이 폐지되던 날 일왕 히로히토가 고개를 숙이고 한참을 흐느껴 울었다는 시종무관의 증언 등 일본 최고위층에 얽힌 에피소드는 물론, 팔로군 포로가 된 뒤 평화운동가가 되어 8년 동안 일본군을 상대로 싸운 일본 군인 등 전선 현장에서 뛰었던 말단 군인들의 풍부한 진술이 생생하게 살아 숨쉰다.
그래서 이 책은 이런 코미디 같은 일이 두 번 다시 반복돼서는 안 된다는, 일본의 재무장 따윈 얼토당토 않다는, 일본이 다시는 전쟁하는 국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소위 말하는 ‘일본 내 양심적 지식인’이 내는 목소리와 상당 부분 겹치는 얘기들이 듬뿍 담겼다.
가령 위안부 문제에 대해 저자는 1996년 ‘아시아여성기금’ 방안을 내놓으며 하시모토 총리가 했던 사과를 강하게 비판한다. “사실관계를 조사해 보고서를 정리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은 채 사과만 하면 그만이라는 태도가 사실은 상대를 얼마나 조롱하는 것인가. 일찍이 쇼와 육군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그 책임은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 아무런 설명 없이 사죄한다는 것은 도리어 예의가 아니다”고 했다.
위안부 강제 연행 증거가 없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다른 측면의 비판을 내놨다. “쇼와 육군에는 그와 같은 성 관리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발상 자체가 아예 없었다”는 얘기다. 병사를 생리적 욕구를 지닌 한 인간으로 간주하기보다는 제국의 영광을 위한 불쏘시개 정도로 취급한 게 쇼와 육군인데, 그런 쇼와 육군이 병사들의 성욕 해소 방안을 고민했을 턱이 있겠냐는 싸늘한 냉소다.
일왕의 측근들이 1946년 ‘쇼와 천황 독백록’을 내놓은 것에 대해서도 일왕의 전쟁 책임을 희석시키기 위한 것이라 비판하는 등 히로히토의 전쟁 책임도 절대 그냥 묻어두지 않는다. 히로시마ㆍ나가사키 핵폭탄 때문에 일본이 피폭국가인양 구는 부분에 대해서도 당시 핵무기를 연구했던 관련자들 증언을 토대로 통렬하게 반박한다. 그 증언들에 따르면 당시 일본은 미국이 핵폭탄 200여개 정도 보유하고 있으리라 추정(실제로는 5개)했고, 그 때문에 항복했다는 것이다. 만약 이 추정이 없었다면 쇼와 육군은 정말로 태평양뿐 아니라 본토에서도 옥쇄작전을 했을지 모른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저자는 일본이 다시금 군대를 가지고 싶다면, 쇼와 육군의 행태에 대한 사죄와 책임과 배상을 모두 해야 하며, 새로 만들어질 군대는 예전의 쇼와 육군과는 전혀 다른 군대임을 아시아국가들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납득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쇼와 육군 체제’의 청산 없이는 정상국가 따윈 꿈도 꾸지 말라는 얘기다. 1999년 나온 책이지만, 지금의 아베 신조 총리에 대한 탄핵문으로도 손색이 없다.
그러나 모든 풍경은 자신이 서 있는 위치에 따라 달라보이는 법. 일본에서는 ‘자학사관’이라 비판 받은 책이라지만, 이 일본의 양심은 의외로 우리의 기대에서 미묘하게 어긋난다. 책 제목에서 감지할 수 있듯 저자는 ‘메이지(明治ㆍ1868~1912) vs 쇼와(昭和ㆍ1926~1989)라는 관점 위에 서 있다. 메이지의 발전과 영광이 쇼와에 가서는 그만 광기가 되고 말았다는 얘기다.
이 일탈의 시작은 만주사변과 중일전쟁이다. 생각해보면 인구 200만 이상 도시가 흔해빠진 중국 대륙을, 고작 200만 육군으로 점령하겠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더구나 일본은 기술력, 경제력, 부존자원 등에 여러 측면에서 다른 선진국에 뒤처진 3류 제국이었다. 그럼에도 무모하게 중국을 침략했고, 그 첫 단추를 부인하고 동남아, 태평양으로 확전하다 마침내 한계에 도달했고, 그 때까지도 정신 못 차리고 ‘가미카제’니 ‘1억총옥쇄’니 하는 헛소리만 남발하다 망해버렸다는 게 기본틀이다. 그 시절 일본 최고 엘리트라는 육군대학 출신 군인들이 보인 어처구니 없는 행태를 세세히 다 밝혀뒀다.
저자가 그에 대한 대안 비슷하게, 길게 설명하는 두 인물은 중국의 천리푸(1899~2001)와 일본의 이시와라 간지(1889~1949)다. 국민당 간부로 장제스의 최측근이었던 천리푸, 그리고 만주사변의 배후조종자로 나중에 도조 히데키에게 밀려난 이시와라 간지의 공통점은 중국과 일본이 싸울 게 아니라 둘이 손 잡고 소련과 싸워야 한다고 주장했고, 그게 진정한 대동아라 믿었다는 대목이다.
이 정도면 감이 온다. 바로 조선 문제가 쏙 빠져 있는 것이다. 쇼와 육군이 문제라면, 메이지시대 한일병합은 문제가 없었다는 얘기인가. 다시 말해 조선, 대만에 이어 만주 정도만 차지하는 데서 일본이 만족하고 멈췄더라면, 그런 정도의 일본이라면 최소한 군사전략적으로는 어느 정도 용인할 만하다는 얘기일까. ‘박유하 논란’ 이후 일본 내 진보적 지식인들의 지적 쇠락에 대한 얘기들이 간간이 나오지만, 어쩌면 이런 부분에서 이미 일본 내 양심적 지식인과 한국의 민족주의가 미묘하게 갈라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미묘한 갈라짐은 장점일 수도 있다. 강렬한 민족주의에서 일제를 도덕적으로 성토하고 단죄하는 건, 어찌 보면 가장 손쉽다. 그보다는 당대의 제국주의가 전체적으로 어떤 구상을 가지고 어떻게 움직였는가는 객관적으로 들여다 볼 필요도 있다. 이 책은 거기에 걸맞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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